[광화문]체코 원전

강기택 산업1부장 2024. 6. 25.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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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나 천연가스 등과 같은 자원은 식량과 더불어 지정학적 긴장의 원인일 때가 많다. 세계 1,2차 대전 역시 석유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지금도 희소한 자원을 갖기 위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체재를 찾기 위한 모색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늘 그렇듯이 가진 쪽은 자원을 요긴한 카드로 활용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한 것이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유럽의 제재를 빌미로 천연가스 공급을 줄인 게 대표적이다.

두 사례 모두 각국이 대안을 '원자력'에서 찾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컨대, 석유파동의 타격을 그대로 입은 한국은 1978년 7월 고리 원전 1호기 준공을 시작으로 28기까지 원전을 늘렸다. 페트로달러에 대응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축적했다. 러시아로 인해 에너지 안보가 흔들리던 유럽은 원전으로 회귀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탈원전'으로 치닫던 흐름이 반전됐다.
'에너지 자립'이라는 시대적 화두에다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전기차와 AI 확산 등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은 '원전 르네상스'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다. 프랑스는 2022년 2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50년까지 최대 14기 신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취임 이후 원전비중 축소 공약을 뒤집었다. 영국도 2050년까지 최대 9기의 원전을 짓기로 했다.

유럽연합(EU)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공동개최했던 첫 '원자력 정상회의'는 이런 변화를 극적으로 반영한 사건이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 정상회의에 참석한 38개국은 공동성명에서 "기존 원자로의 수명 연장을 지원하고 자금 조달 여건을 조성하는 등 원자력 에너지의 잠재력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신규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전(SMR) 등 첨단 원자로의 조기배치도 중요한 과제로 정했다.

사실 원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유럽보다 미국에서 먼저 이뤄졌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을 허용하지 않았던 미국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에 조지아주 보글 3호기를 승인하며 원전건설을 재개했다. 트럼프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원전을 육성하고 수출산업화하는 것을 견제하면서 미국의 주도권을 지키려 했다. 미국 상원이 지난 19일 첨단원전 확대 지원법을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킨데서 알 수 있듯 민주, 공화 양당은 '진영논리'가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원전에 접근한다.


한국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생태계가 훼손됐던 것을 복원중이다. 정부는 2038년까지 4.4GW 규모의 신규 원전 설비를 건설하는 '11차 전력수급 계획안'을 내놓았다. 원전 수출에도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과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이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한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에너빌리티 등 '팀코리아'는 '사막에서 예산에 맞춰 납기를 어기지 않고 공사를 끝낸'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을 트랙레코드 삼아 체코 원전 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전통적 원전강국 프랑스를 제치고 계약을 따내는 것은 원전수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반도체의 리더십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원전은 미래 먹거리의 한 축으로 자리할 수 있다. 한번 가동하면 60년을 가는 원전은 그 기간 만큼 안정적인 운영과 유지·보수를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운명을 같이 할 나라에 발주를 한다.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시점에 한때 친중·친러 노선을 걸었던 체코로부터 원전을 수주하는 것은 중동에 이어 동유럽까지 에너지동맹을 구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팀코리아의 승리를 빈다.

강기택 산업1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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