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경정(更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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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은 무고죄(제1조)로 시작한다.
이 법전을 반포한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1750년 통치)은 자신이 판결하는 법정의 권위를 위해 무고죄를 법전 맨 앞에 두고 가장 무겁게 처벌한다.
얼마 전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이 최 회장 요청으로 '경정(更正)'됐다.
이를 '수정(修正)'이 아닌 '경정'이라 함은 판결과 판결문 권위를 지키기 위한 용어 선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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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은 무고죄(제1조)로 시작한다. 이 법전을 반포한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1750년 통치)은 자신이 판결하는 법정의 권위를 위해 무고죄를 법전 맨 앞에 두고 가장 무겁게 처벌한다. 증거 없이 상대방을 고발해도 사형이다. 무고는 국가와 법정을 기만하는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함무라비 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제국의 첫 번째 황제다. 그 위상이 함무라비 법전에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심판의 권위는 상당하다. 한 팀의 감독이 판정을 두고 4분 이상 항의하면 퇴장당한다. 비디오 판독 제도도 생겼지만 9이닝을 기준으로 2회에 불과하고 2회 모두 원심을 번복시켜야 추가로 1회 더 기회를 얻는다. 판독 결과에 관해선 항의할 수도 없다. 심판의 권위는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한 까닭이다.
얼마 전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문이 최 회장 요청으로 ‘경정(更正)’됐다. 경정은 예를 들어 채무자 주소나 주민등록번호가 잘못 기재됐을 때 이를 바로잡는 절차다. 주소에 오류가 있으면 채권자가 채무자 재산을 압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수정(修正)’이 아닌 ‘경정’이라 함은 판결과 판결문 권위를 지키기 위한 용어 선택이 아닌가 싶다. 판결문이 추후에 ‘수정’된다면 그 판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퍼져 소송 당사자들이 승복하기 어려워진다.
‘최태원-노소영’ 가사재판 2심 재판부는 애초 판결문에서 SK그룹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당시인 1998년 5월 대한텔레콤(SK그룹 지주사인 SK주식회사 전신) 주당 가치를 100원이라 했었다. 이후 최 회장 측의 항의와 신청으로 원래 주당 가치 100원을 1000원으로 ‘경정’했다. ‘0’ 하나를 더 붙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상속 당시 회사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최 회장의 회사 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낮아지고 노 관장에게 지급할 재산 분할 액수 역시 작아질 수 있다. SK그룹까지 나서서 ‘치명적 오류’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이 소송은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 현대 사회는 합리성이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전근대적 산물인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법원은 더욱 그렇다. 최 회장이든 노 관장이든 승소하려면, 아니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내려면 법원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합리적 논거로 재판부를 차근차근 설득하는 ‘예술적인 힘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옥재 서울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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