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아태본부 싱가포르 50분의1… 규제가 발목”
韓, 아태본부 희망지 조사선 2위… 싱가포르 5000곳인데 100곳 안돼
노동 경직성-중대재해법 등 개선… 아태본부 1000개 시대 열어야
19일 서울 영등포구 암참 집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한국 생활 20년 차의 연륜을 드러내듯 한국어에 막힘이 없었다. 여러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장 시절 직접 겪은 노사 문화와 동료 미국인 지사장들의 애로를 전달하면서도 한국 시장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3월 대통령실을 찾았을 때 소회를 묻자 김 회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아태본부를 싱가포르는 5000곳, 홍콩이 1400곳, 중국 상하이가 940곳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100곳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자 한국 정부에서 다소 놀라셨다”며 “홍콩과 상하이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처했고, 싱가포르가 비용 급등으로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떠오를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태본부 선정에는)사업적 유인 외에도 언론의 자유, 문화나 생활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된다. 상징적으로 최근 뉴욕타임스도 디지털뉴스본부를 홍콩에서 서울로 옮겼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아태본부 유치 확대를 위해 첫 번째로 꼽은 개선 사항은 노동 경직성이다. 김 회장은 “미국 기업들은 본사에선 노조 측과 통상 2, 3년에 한 번씩 (임금 및 단체)협상을 하며 대부분 프로세스가 안착돼 있다. 그런데 여기선 매년 새롭게 협상을 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통이 어려워 미팅이 수십 차례, 많게는 서른 번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5∼2017년 한국GM 대표이사였던 그는 “미국에도 전미자동차노조(UAW) 등 강성노조가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 느끼는 부담은 한국이 훨씬 큰 것 같다”고도 말했다. 또 “특히 규모가 크고 투자비가 높은 산업일수록 경기가 하락하면 고용 부담이 크다. 미국의 경우 사전 예고, 재교육 시스템 등 안전장치들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한국은 자발적 퇴사가 아니면 구조조정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회사와 직원이 한배를 탔고, 회사가 살아남아야 직원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국의 제도적 한계로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인 형사처벌 규제를 꼽았다. 김 회장은 “미국, 싱가포르, 일본, 홍콩 어디에도 기업 내 재해에 대해 최고경영자(CEO)가 관여 여부를 떠나 형사책임을 지는 나라는 없다. 사고가 발생했다면 회사에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직접적인 의도가 없었던 개인을 처벌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안전사고는 아니었지만 기업 활동과 관련해 벌어진 일로 외국계 기업 CEO가 범죄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김 회장은 “모 외국 항공사의 경우 해외 공항에서 비자 문제가 있는 승객을 실수로 출국시켜 한국에 입국했는데, 이와 관련해 해당 항공사 한국지사장이 벌금을 낸 사례가 있다”며 “다른 나라였으면 해외 공항 담당자에게 물었을 책임을 한국지사의 책임자라는 이유로 덮어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형사처벌 기록이 남아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 신청에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해외 본사에서는 한국 파견 전에 따로 리스크 교육을 시킬 정도”라며 “과도한 규제는 유능한 CEO 영입을 저해하는 장애요인이 되는 만큼, CEO가 불법 활동에 직접 관여한 경우로만 형사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태본부 거점을 가장 많이 유치한 싱가포르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해 해외 기업 투자를 유치한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는 특정 기업이 아태본부를 검토한다고 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세금 혜택과 인센티브를 주며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한다. 한국은 이미 디지털 인프라를 비롯해 여러 선호 요소가 있으니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훨씬 매력도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암참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글로벌 기업의 지사 소득에 대해서는 최대 10%의 특혜세율을 적용하며 현지 연구개발(R&D) 지출에 대해서는 소득공제를 250%로 제공하고 있다.
김 회장은 1953년 암참이 설립한 이래 백인이 아닌 최초의 한국계 회장이다. 김 회장은 “과거 한국의 미국 기업 지사장들은 모두 백인이었지만 이제 한국인 엘리트 지사장들이 대거 선임되고 있다”고 짚었다. 맥도날드, 록히드마틴, 3M 등 주요 기업들의 한국지사장에 모두 한국인이 선임되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채용과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태본부 유치는 주요 기업들의 외국인직접투자(FDI) 확대나 일자리 창출을 넘어 글로벌 산업계 리더로서 한국의 입지 강화에도 크게 기여한다”며 “이제 한국도 글로벌 기업 아태본부 1000개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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