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인기없는 이유는 주관적 독단 빠진 비평 난립 탓”

이호재 기자 2024. 6.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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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철학이기 전에 과학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76)가 최근 출간한 학술서 '한국현대문학비평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김 시인의 비평을 '과학으로서의 시학'으로 정의한 이유다.

권 명예교수는 1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시인은 당대엔 드물게 비평의 과학적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김 시인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한국문학사에서 비평 논리와 방법의 새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한 평론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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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평론가 등단 권영민 교수, 학술서 ‘한국현대문학비평사’ 펴내
주관적 감상에 따른 비평보다는 과학적 방법에 기반한 김기림 시인
요즘 젊은 평론가들이 눈여겨봐야
정치성 치우쳐 자기주장만 하면, 한낱 개인적인 의견 수준 못넘어
1000쪽에 달하는 학술서 ‘한국현대문학비평사’를 펴낸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은 방대한 규모라서 출간 작업이 까다로웠다. 오랜 시간을 들여 책을 마무리해 기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비평은 철학이기 전에 과학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시인 김기림(1908∼?)은 1935년 한 일간지에 쓴 평론 ‘현대 비평의 딜레마’에서 문학비평의 성격을 이렇게 정의했다. 문학작품을 분석 평가하는 일은 주관적 감상에 따르기보다는 다른 학문처럼 과학적 방법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76)가 최근 출간한 학술서 ‘한국현대문학비평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김 시인의 비평을 ‘과학으로서의 시학’으로 정의한 이유다.

권 명예교수는 1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시인은 당대엔 드물게 비평의 과학적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김 시인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한국문학사에서 비평 논리와 방법의 새로운 전환을 가능하게 한 평론가”라고 강조했다.

시인 김기림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DB
김기림은 시인 정지용(1902∼1950), 이상(1910∼1937)과 문학동인 ‘구인회’를 만들고, 허무주의와 감상주의를 반대하며 명랑한 시를 강조한 ‘오전의 시론’을 내놓았다. 일본에 유학해 영국 문학평론가 아이버 리처즈(1893∼1979)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비평에 몰두했다. 권 명예교수는 “주관적 감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김 시인의 노력은 요즘 젊은 문학평론가들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1971년 문학 평론가로 등단한 그는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도쿄대 초빙교수로 일하며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서 ‘한국문학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해 7월부터 중국 산둥대에서 외국인 석좌교수로 일하며 ‘국제 동아시아연구원’(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1000쪽에 달하는 신간에서 권 명예교수는 한국문학 비평의 성립과 역사적 전개 양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한국계급문학운동연구’(2014년), ‘이상 연구’(2019년), ‘한국현대문학사 개정판’(2020년·전 2권)에 이어 네 번째 학술 대작을 완성한 것. 그는 “2014∼202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겸임교수로 한국문학을 강의하며 원고를 썼다”며 “신간 초고가 200자 원고지 1만 장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신간은 비평사를 문학의 개념과 비평 방법의 확립에 초점을 맞춰 구성했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문학단체인 카프(KAPF) 등 문단의 쟁점을 중심으로 서술한 기존 비평사와 다른 점이다. 이 때문에 6부에 걸쳐 현대문학 비평의 전개 양상을 건조하게 기술했다. 그는 요즘 문학비평이 일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를 묻자 “객관적 비평이 사라지고 주관적 독단에 빠져든 비평이 난립했기 때문”이라며 “논리도 체계도 없이 정치성에 치우친 자기주장에만 매달린다면 비평은 한낱 개인적 의견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간이 한국 현대문학 비평의 출발을 한글에 대한 관심이 치솟던 19세기 후반으로 삼은 점도 주목된다.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이 한글 전용을 채택한 사실에 집중하면서 주시경 선생(1876∼1914)의 ‘국문론’까지 현대문학 비평의 성립 단계로 정의했다. 그는 “1970, 80년대 민족·민중문학까지 정리했으니 거의 한 세기를 다룬 셈”이라고 했다.

방대한 분량의 이번 연구서 출간을 마친 소감을 묻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한국문학 비평의 논리와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는 건 1970년대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꿈꿔 왔던 일이에요. 이제 평생 일궈온 공부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합니다. 이 책이 제 마지막 학술 연구서가 될 것 같네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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