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속 ‘年4000% 이자’ 업체 찾아가보니 1평짜리 ‘유령 사무실’[히어로콘텐츠/트랩]②-上
<2>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上)
오후 2시 39분, 사무실 책상에 널린 휴대전화 중 한 대를 집어 들었다. 오전에 새로 개통한 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010-6210-××××. ‘대출○○’ 등 주요 대부중개 플랫폼 5곳에 광고를 올린 한 대부업체의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2시 41분. 2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는 010-5722-××××. 처음 보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대출 문의 주셨죠? 몇 가지만 빠르게 여쭤볼게요.”
상담원은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직업, 재직 기간, 월급, 급여일, 기존 대출 유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물었다. 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대출 조건을 알려줬다.
“50만 원 빌리시면 1주일 뒤에 90만 원으로 갚으시면 돼요.”
1주일 이자 40만 원은 연이율로 따지면 4171%였다. 법정 상한(연 20%)의 200배가 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로 적힌 이 업체의 주소로 가보니 3.3㎡(1평)도 안 되는 빈 사무실이 나왔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대출 이용자로 가장해 취재했다. 62곳 중 단 3곳. 취재팀이 검증한 대부업체 가운데 법정 이율(연 20% 이내)을 지키면서 대부업 등록번호를 공개한 곳이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 대부업체만 접촉했는데도 그랬다.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나머지 23곳은 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불법이 의심되는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광고하는 수백 개 업체는 “전화 한 통 OK” “이율 준수” 등 문구로 급한 돈이 필요한 서민을 유혹한다. 하지만 ‘상담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며 전화하는 순간, 불법사채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연이율 수천 %’가 기본 공식
현행법상 대부업자는 정식 업체든 아니든 연 20%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개인끼리 돈을 빌려줄 때도 이자가 연 20%를 초과하면 처벌된다. 하지만 취재팀이 접촉한 62곳 중 26곳은 불법 고금리를 요구했다. 상담원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웬만하면 1주일에 (원금) 50(만 원)에 (상환액) 70이나 80은 생각하셔야 돼요. FM(공식)이에요.”
“60에 90이에요. 원래 60에 95인데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는 거예요.”
“지금 처음 써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대출 이용자의 신용이 낮은 약점을 노리고 엉뚱한 명목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수고비, 착수금, 거마비, 공증비…. 이름은 다양했지만 전부 이자로 계산해야 한다.
“첫 대출엔 공증비라는 게 있어요. 50만 원에서 5만 원 떼고 45만 원을 드려요.”
전부 광고에선 적법한 이자를 내세웠다. 취재팀이 더 비싼 이자를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못생긴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차은우처럼 머리를 해달라고 하면 일단 ‘해드리겠다’고 하잖아요? 저희도 똑같아요. 손님도 은행에서 대출 안 되고 주변에서 빌리기 민망하니까 저희를 찾으신 거잖아요. 저희도 말씀 잘 드려서 (사채) 쓰게 하는 게 일인 거죠.”
● 등록번호 묻자 “원래 없어요”
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번호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다. 미등록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불법 행위다. 등록번호는 사무실에 게시하고, 광고할 때도 밝혀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최고 5000만 원 물린다. 이용자가 돈을 빌리려는 곳이 등록 업체인지 확인하려면 등록번호를 알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등록번호를 알려주길 거부하면 불법사채업자로 본다.
그러나 62곳 중 24곳(14곳은 불법 고금리도 요구)은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다고 했다. 대놓고 불법을 인정한 것.
“저희는 따로 등록된 게 없어요. 어느 업체를 다 전화해 보셔도 등록된 데는 없어요.”
취재팀이 ‘등록하지 않고 영업해도 되냐’고 묻자 질문의 의도를 의심했다.
“지금 대부업 하려고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면 다른 데 알아보세요.”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업체도 있었다.
“제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런 말 처음 들어보고요.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거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은 업체는 23곳이었다.
● ‘1명당 500원’ 불법 조직에 팔리는 연락처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 36곳 중 33곳은 처음 전화했을 때 받지 않거나 담당자를 연결해 주겠다고 한 뒤 다른 번호로 연락해온 경우였다. 전화가 다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게는 1분, 통상 15분이었다. 나머지 3곳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는데, 불법 조직으로 연결된 이유가 뭘까.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에 따르면 그 연결고리는 2가지로 요약됐다.
하나는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둔 경우다. 대다수는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조직원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거나, 돈이 궁한 사람에게 200만 원 안팎을 주고 등록 명의를 사 온다. 등록증은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증명하고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짜리 한국대부금융협회 교육 이수증 등만 내면 2주 안에 나온다.
또 다른 방법은 정식 대부업체가 대출 문의 고객의 연락처만 모아서 불법사채 조직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런 연락처를 ‘DB(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5월 구속 기소된 20대 불법사채업자 최모 씨도 이렇게 사들인 DB로 고객을 꼬드겼다.
이런 DB는 보안 메신저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이달 14일 취재팀은 DB 구매자인 척 텔레그램에서 한 판매업자를 접촉했다. 그 업자가 제시한 가격은 대출 문의 고객 1명당 500~1000원이었다. 그는 자기 물건에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저희 DB가 재구매율이 좋은 편이에요. 한번 쓰면 계속 써요. 전날 대출 물어본 사람 정보를 오늘 팔거든요.”
● “번호 장사가 나쁜가요?” 당당한 업체들
취재팀에 불법 고금리를 요구한 업자 2명은 DB 구매를 인정했다.
“거기(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는 등록증만 있지 대부업 하는 곳이 아니에요. 거기서 번호를 뿌려주고 그걸 제가 받은 거예요.”
“다 그런 식이예요. 그 사람들(정식 대부업체)은 ‘번호 장사’ 하는 거고, 저희는 받아서 영업하는 거고요. 그게 나쁜 건가요?”
취재팀은 대출을 문의한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사채 조직에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대표에게 연락해서 해명을 요청했다. 그중 11명은 “그럴 리 없다”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머지 3명은 문의해온 연락처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겼다고 했다. 22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이번 취재를 위해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 수다. 취재팀이 검증 대상으로 정한 정식 대부업체는 62곳이었다. 25개 플랫폼에 등록된 업체 818곳 중에서 광고를 4개 이상 사이트에 게재한, 활발히 영업하는 업체였다. 이들 뒤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을 특정하려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번호가 필요했다.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는 여러 경로를 거쳐 조직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경로를 역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찾는 건 수사기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 번호는 오직 업체 1곳을 검증하는 데에만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 정식 대부업체를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불법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 조건과 대부업 등록번호, 업체명을 물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정식 대부업체에 대출을 문의했지만 연락이 온 건 불법사채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이런 피해 유형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느 업체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려면 위장 취재가 불가피했다. 불법적인 제안을 한 곳엔 재차 연락해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했다.
새 휴대전화는 모두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기자의 명의로 정식 개통했다. 명의자의 개별 동의를 받았고, 휴대전화 개통 절차도 준수했다.
:법률 자문:
노희정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장, 박정만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장(변호사),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 안민석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윤정원 변호사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불법사채 조직과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 주소지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17곳이나 대부업체의 흔적조차 없는 ‘유령업체’였다. 전국을 돌며 추적한 결과는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下)’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1)
‘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2)
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Kw-RO8lUHo)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
▽영상: 송유라CD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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