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막다른 길에 선 韓 안보, 정부硏서 나온 핵무장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이 지난주 북·러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자체 핵무장과 잠재적 핵 능력 구비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잠재적 핵 능력 구비’란 한미 원자력 협정의 제한을 받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의 확보를 뜻한다. 전략연은 사실상 국책 연구소로 간주된다. 지금까지 국책 연구소들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미국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를 거론한 적은 있지만 독자 핵무장과 재처리 권한 확보까지 언급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만큼 이번 북·러 정상회담 결과가 우리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뜻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평양에서 북핵에 따른 유엔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뜻을 드러냈다. 전략연은 “북한의 핵무장을 우회적으로 용인한 것”이라고 했다. 북·러가 이번에 체결한 조약은 ‘평화적 원자력 분야 협력’을 명시했는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국가와의 원자력 협력은 해당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NPT에 비가입한 인도와 2008년 원자력 협정을 맺은 게 대표적이다. 중국은 이미 북핵을 인정하는 추세다.
한국은 북·중·러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북·중·러는 모두 핵을 갖고 있고 독재자 한 명이 좌지우지하는 전체주의 국가다. 그런데 한국은 핵 없이 이들과 맞서 있다. 이런 불균형은 지속될 수 없고 언젠가 문제가 터진다. 우리 사회는 불감증에 빠져 있지만 객관적으로 심각한 안보 위기다.
미국의 핵우산으로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인식은 미국 조야에서 본격 표출되기 시작했다. 의회와 학계에선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개진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보좌관을 지낸 앨리슨 후커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거론하며 “북·러의 관계 심화가 확실히 한국을 그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일부이지만 한국의 안보 상황을 우려하는 인사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제 한국 정부도 핵무장 논의를 더 이상 금기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 한국이 미국과의 협의하에 핵을 갖는 것이 미국의 서태평양 전략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핵 옵션을 요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장은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해도 계속 타진해야 한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후세에 죄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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