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주주 충실 의무’ 상법 개정,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8개 경제단체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계획에 반대하는 건의서를 24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접어두더라도,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유발하고,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에 공격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호소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 전반으로 확대되면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구조 조정이나 회사의 장기 발전을 목표로 한 이사회의 의사 결정도 ‘대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으로 소송감이 될 수 있다. 또 투자금 조달을 위한 신주 발행이나 전환사채 발행도 소액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로 간주돼 원천 차단될 수 있다. 자사주 처분이나 이익 잉여금 유보 등의 결정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들에 의해 ‘소액 주주 이익 침해 행위’로 경영권 공격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법 개정 논의는 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실제 2020년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 카카오의 계열사 분할 상장 등 대기업의 쪼개기 상장이 소액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판론이 비등했었다. 하지만 쪼개기 상장 논란 이후 물적 분할 시 반대 주주에 대한 주식 매수 청구권 부여, 주식 가치 희석 행위 제재, 부당 지원 및 사익 편취 금지 등 제도 보완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기업 이사들이 주주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법제화는 다른 문제다. 주주에는 대주주, 소액 주주, 우리 사주, 외국인 주주 등 다양한 주체가 있고, 각자 이익의 관점이 다른데 경영상 의사 결정을 하면서 어떻게 매번 ‘모든 주주의 이익’을 충족할 수 있나. 주주들의 소송이 남발될 것이란 우려를 기업의 엄살로만 치부할 수 없다.
궁극적 정책 목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상법에 ‘주주 충실’ 조항을 넣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없애는 것이 더 시급하다. 낮은 주주 환원의 주요인으로 지적되는 세계 최고의 상속세, 50%에 육박하는 대주주 배당소득세도 먼저 수술해야 한다. 상법 개정은 특정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 의결권’ 등 선진국에선 모두 운영하는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을 전제로 신중하게 검토돼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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