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광화문·뷰] 블루오션, 위선을 팝니다
진정성을 비웃는 시대… 위선은 이제 유행 상품이 됐다
영화하는 후배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가 붙인 제목은 ‘위선의 끝판왕’. 지난달 독도를 찾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거기 있었다. 같은 사진에 투샷으로 잡힌 인물은 정상진 문화예술특보. 영화 전문가답게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집중하는 장면이었는데, 조 대표는 이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이렇게 적었다. “나와 문화예술특보의 촬영 장면을, 사진 전공한 수행비서가 한 앵글 속에 잡았다.”
‘위선의 끝판왕’이라는 조롱은, 정 특보 손에 든 카메라가 소니 FX3라는 데 기인한다. 일제 카메라로 ‘반일(反日)’하냐며 비웃은 것이다. 그 후배가 왜 그러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독도 방문 취지가 우리 정부의 대일 정책 비판일 텐데, 소니 카메라를 들건 라이카로 찍건 둘은 별개로 판단해야 2024년의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조국 대표가 그동안 보여준 내로남불과 위선에 있을 텐데, 이 해프닝은 위선도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위선에 실패한 사례라면 모를까.
평범한 일반 시민에게 위선은 예의나 염치와 교집합이 크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감정의 소유자라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법. 공감력 부족으로 태어났다면 위선이라도 갖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배우 정우성의 유엔난민기구 홍보 대사 활동도 지지하는 편이다. ‘배부른 위선자’라고 욕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자신의 여유를 좋은 일에 쓸 수 있다면 그 반대보다는 낫다. 문제는 그다음. 이렇게 쌓은 상징 자본을 정치권력 획득하는 데 활용한다면, 그건 위선을 팔아 권력을 사는 행위다.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의 위선이 문제가 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다른 행동을 하는 위선. 자기 자식은 외고 보내면서 자사고를 없애겠다던 교육감, 부동산 문제에 목숨 걸었다는 정부 밑에서 건물주를 꿈꾸던 전 청와대 대변인과, 내 새끼 좋은 대학을 위해 인턴 경력과 표창장으로 생기부 분칠하던 전 법무부 장관을 기억한다. 다들 그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그건 당신들이 권력을 꿈꾸거나 보유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이 겉 다르고 속 다른데, 교육감이 내 새끼 남의 새끼 구분하는데, 국회의원이 대학생 딸 이름으로 대출받아 강남 아파트에 ‘몰빵’하는데, 왜 평범한 국민들은 법을 지키고 착하게 살아야 하나.
진정성이 놀림받는 시대, 위선은 이제 대한민국의 트렌디한 상품이 됐다. 소설가 한은형의 단편 ‘식물성 관상’에는 서울 연남동의 비건 식당 ‘풀먹는 호랑이’가 등장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이 업장 알바생들은 모두 외국인. 외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은 동네인 데다, 키오스크 덕분에 접객 부담도 없다. 덴마크의 루카스, 홍콩의 탐, 일본의 하루카를 뽑은 뒤 사장은 추가로 흑인 한 명을 더 뽑자고 말한다. 조건이 있다. “(아프리카 말고) 프랑스 흑인 같은 거, 그런 애 하나 데려와. 하얀 앞치마 하나 입혀 놓으면 매출은 끝이야.” PC(정치적 올바름) 앞세우며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던 사장은 본색을 드러낸다. “장애인도 한 명 데려와. 표정이 일그러지는 종류는 안 돼. 다리가 불편한 것도 안 되고. 팔이 불편한 정도가 좋지 않을까.” 줄기찬 위선에 매니저는 묻는다. 도대체 왜 비건 식당을 하느냐고. 사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블루오션이었으니까.”
위선이 블루오션이 된 시대, 어쩌면 최대의 피해자는 선(善)이다. 정의와 공정도 마찬가지다. 원래의 좋은 의미는 다 증발한 채, 시민들은 이 명사를 앞세우는 사람들을 믿고 거르기 시작했다. 정의와 공정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횡액을 당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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