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항공기 정비 강국’ 되려면 TCA 가입 서둘러야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은 하루 1000여 편의 국제선 항공편이 오고 가는 아시아의 3대 허브 공항 중 하나다. 창이 국제공항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기가 공항에 들어왔을 때 기체 관리와 정비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공항 배후 단지에 대규모 MRO(항공기 정비) 산업 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제를 포함한 필요한 모든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항공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해 신흥 MRO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다.
MRO는 유지(Maintenance), 수리(Repair), 정비(Overhaul)의 이니셜을 딴 용어다. 정기적인 유지·보수를 통해 항공기의 성능을 최적화하고, 기체의 수명을 연장시키며, 운항의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신규 항공기 도입 비용보다 도입 후 수십 년간 투입되는 MRO 비용이 4배 이상이라고 한다. 더욱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기체 관련 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안전을 위한 MRO 산업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시아의 3대 허브 공항 중 하나인 우리 인천국제공항의 MRO 여건은 좋지 않다. 이에 우리나라도 MRO 산업 생태계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부는 2021년 내놓은 ‘MRO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라 2026년까지 인천에 첨단복합항공단지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이다. 지난 4월 착공식도 마쳤다. 이렇게 인천을 중심으로 한 MRO 클러스터가 완성되면 국내 항공사들의 해외 정비 의존도를 낮추고 해외 항공사들의 항공기 정비 물량도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정부가 MRO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버티고 있다. 대표적인 걸림돌은 항공기 부품에 부과되는 관세다. 글로벌 공급 사슬이 복잡해 해외 부품 의존도가 높은 항공 MRO 시장 특성상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항공기 부품에 대한 관세 면제가 필수적이다. 경쟁 국가가 항공기 부품에 면세 혜택을 주는 사이 다른 나라가 관세를 계속 부과한다면 정비 원가가 상승해 해당 국가의 MRO 산업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MRO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EU 등은 ‘WTO 민간항공기 교역 협정(TCA)’ 가입을 통해 항공기 부품 관세를 감면하고 있다. TCA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대만 등 33국이 가입해 항공기 교역과 관련한 국제규범을 선도하는 무역협정이다. 최근에는 브라질도 가입을 승인받고 국내 비준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TCA에 가입하면 관세 감면에 동참하게 될 뿐 아니라 항공기 교역과 관련한 국제 규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도 대한민국의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항공우주산업을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관세법을 통해 항공기 부품에 대해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관세를 면제하고 있지만, 내년부터 관세 감면 비율이 매년 20%씩 줄어든다. 정부는 FTA를 활용해 관세 감면을 받으라고 하지만, 항공기 부품은 공급 사슬이 복잡해 원산지 증명이 어렵기 때문에 FTA를 통한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미국, EU, 싱가포르를 포함한 세계 MRO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관세법상 면세 유지가 시급한 이유다.
나아가, 항공기 부품에 대한 영구적 관세 면제를 통해 MRO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TCA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 동북아에서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 일본과 대만은 TCA에 가입해 한국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MRO 산업 강국이 되겠다고 종합 대책까지 마련한 정부가 TCA 가입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주항공청까지 출범시킨 정부가 항공 산업 육성에 진심이라는 것을 이제는 TCA 가입이라는 성과로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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