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평양의 러시아 정교회

김태훈 논설위원 2024. 6. 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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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로마 제국이 동, 서로 나뉘면서 종교도 조금 달라졌다. 동로마 제국이 믿었던 것이 정교회다. 이 정교회가 러시아로 퍼진 것은 키예프 공국 블라디미르 1세 때였다. 동로마 제국 황제가 반란 진압군 파병을 요청하자 블라디미르는 동로마 황족 여성과의 결혼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동로마 황녀 안나가 “정교회를 받아들이면 결혼하겠다”고 하자 통치를 위해 종교적 구심점이 필요했던 블라디미르가 흔쾌히 응했다. 동로마 제국이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자 러시아가 정교회의 주도권을 쥐었다. 지금도 전 세계 3억명 정교회 신자 중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1억명이다.

▶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오래도록 한 식구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차별이 둘을 갈라서게 했다. 스탈린의 식량 수탈,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점령 등으로 사이가 벌어졌다. 2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결정타였다. 열렬한 푸틴 추종자인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침략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명명하고 우크라이나로 진격하는 탱크에 성수(聖水)를 뿌리자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들끓었다. 다른 정교회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인정했다.

▶러시아인들의 신앙심은 깊다. 종교를 아편이나 마약이라고 치부하는 소련 공산당도 정교회를 없애지 못했다. 여기엔 정치 권력에 굴종해온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도 한몫하고 있다.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던 18세기 표트르 대제는 세속화된 서방 교회와 달리 정교회가 여전히 백성을 정신적으로 지배하자 총대주교를 없애고 황실에 신성통치종무원을 설치해 교회를 장악했다. 표트르를 롤모델 삼아 종신 집권 길을 연 푸틴도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을 통치에 활용한다. 독실한 신자를 자임하며 종교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한다.

▶세계에서 종교를 가장 적대하는 나라는 북한일 것이다. 성경을 보기만 해도 살아남기 힘들다. 다른 탈북자는 노동교화형이지만 중국에서 목사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 정치범 수용소나 처형이다. 그런 북한의 평양에 성당·절·교회가 있다. 외국에 보여주기 위한 연극의 무대다.

▶지난주 북한을 방문한 푸틴이 과거 김정일이 설립한 평양 정교회 성당을 찾아가 종교 그림을 선물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 수많은 여성, 어린이를 죽인 독재자가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있는 가짜 ‘성당’을 찾았다니 기괴하다. 이번 일로 러시아 정교회가 남북한을 동시에 관장하는 교구장을 5년 전에 임명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 교구장은 북한 정권에 최소한의 ‘종교의 자유’를 요구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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