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에게도 품격 높은 화장장이 필요하다
‘바람의 언덕.’ 이름만으로는 마치 무슨 소설 제목 같다. 화장장 이름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다. 인구 8만명의 일본 규슈 오이타현 나가쓰시 화장장이다. 전 세계의 여러 건축 조경 전문가들이 찾는 유명 화장장이자 역사문화공원이다. ‘명상의 숲’이라는 화장장도 있다. 일본 기후현 가가미가하라시에 있는 ‘자유곡면’이라는 특별한 건축구조로 유명한 화장장이다. ‘바람의 언덕’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의 작품이고, ‘명상의 숲’은 이토 도요라는 유명 건축가 작품이다. 그들의 명성과 작품성 때문에 한국 관계자들도 한 번쯤 답사를 다녀오는 화장장들이다.
유럽의 널리 알려진 화장장을 소개하는 <고별건축(Goodbye Architecture)>이라는 책이 있다. 유럽 22개국의 명품 화장장 26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파리 페르 라세즈 묘지 화장장이 단연 돋보이는데 무려 135년 전에 지은 것이다. 벨기에의 호프하이데 화장장, 독일 베를린의 바움슐렌벡, 노르웨이 오슬로의 알파세트 묘지 화장장 등도 모두 각각 독창적인 건축미를 뽐내고 있다.
“한국도 이젠 이름값 하는 화장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혹자는 “화장장이 모자라 난리 난 판에 무슨 이름값 하는 화장장 타령이냐”고 반문한다. 그런 분들께 되묻고 싶다. 세계 화장장은 멀찍이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뒤떨어진 화장장에서 망자들과 헤어져야 하느냐고.
이름값 하는 품격 높은 화장장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뛰어난 건축미와 조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파리 페르 라세즈는 도심 명소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역사성이 있다. 일본 화장장들은 저명 건축가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독창적인 건축미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제대로 된 화장장이라면 무엇보다 화장과 장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엄숙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과 유족을 정중히 맞아들여 육신과 고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산화시켜 하늘로 보내는 두어 시간 동안 애도 속에 기다리다가 정성껏 유골을 수습한 후 마지막 떠나는 길을 예를 다해 배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난 30여년간 나는 우리나라 전국 화장장 61곳을 직접 돌아봤다. 그중에서 명품 화장장이라고 부르고 싶은 곳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대부분 작품성이나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사각형 건물 일색인 데다 공감하기 어려운 외부 장식은 오히려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내부는 더 문제다. 고인과 유족은 없고 ‘관리자 편의’만 앞세운다.
2024년 초여름, 전국 여기저기서 화장장 입지 선정 성공 혹은 실패 소식이 전해 온다. 두어 곳은 이미 입지를 잡아 후속 절차에 돌입했다. 머잖아 착공 소식도 들려올 듯하다.
화장장을 건립하고 있는 전국의 시장 군수님께 간곡히 당부드린다. “이젠 우리도 세계 명소가 될 화장장 하나 지어봅시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연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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