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올여름이 제일 시원할 것입니다

기자 2024. 6.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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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반도체 패권, 수명 연장, 치매 극복, 암 정복 등 다양한 난제를 국가의 최우선 어젠다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삶의 터전이 붕괴된다면 새로운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이상기후는 한 국가의 미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것이 이상기후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도미노 효과다

아침부터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반갑기 그지없다. 사실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지 않기에 여름 장마 기간은 늘 피하고 싶은 시즌이지만 이번은 다르다. 며칠간 이어지던 폭염으로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에 더위 맛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동안 기후변화에 의문을 갖던 분들도 이제야 기후변화를 실감한다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지금 이 폭염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 여기저기 지구가 끓어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는 계속 뜨거워져 여름철 폭염의 강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기후과학자들의 예측 그대로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내년은 어떨까? 당연히 더 뜨거울 것이다. 나 또한 매해 기후변화 강의에서 하는 얘기가 있다. 올여름이 당신의 인생에서 제일 시원한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올해부터 한번 두고 보시면 좋겠다.

폭염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온도 상승이라는 기상학적 이벤트로 끝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염에 따른 기온 상승은 여러 분야에 다양한 형태로 연쇄적인 영향을 끼쳐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큰일이 발생할 수 있다. 마치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도미노 게임처럼. 첫 도미노가 넘어지면 바로 이어서 다음 도미노가 차례로 쓰러져간다. 게다가 도미노는 계속 쓰러지면서 점점 에너지가 축적되기 때문에 마지막 도미노는 처음과 달리 아주 큰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도미노 효과는 정확히 폭염의 특징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 지역의 폭염으로 시작해서 지구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폭염의 도미노 효과는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폭염을 통해 살펴보려 한다.

지금 인도는 매일 기온이 섭씨 45~50도를 기록 중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숫자라 감이 잘 잡히지 않지만 지난주(6월 중순) 서울에서 섭씨 35.7도를 기록하여 75년 만에 때 이른 6월 폭염을 기록한 경험에 빗대어보면 얼마나 더운 날씨일지 예상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35도를 찍은 날도 너무 더워서 혼쭐이 났었는데 45도면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인도에서는 강한 폭염이 지속되면서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에너지가 부족하여 냉방장치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인도의 한 방송사가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있어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방송을 하다 앵커가 방송 도중 실신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방송사에서는 해프닝으로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경제수준이 낮은 사회적 약자들은 에너지 수급의 불균형으로 분명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그리고 인도의 폭염은 자국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인의 밥상물가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2022년 폭염 사례에서 경험했듯이 인도의 폭염으로 인한 밀 공급량 부족 사태는 한국의 밀가루 음식 가격을 끌어올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중국 북부 폭염, 한국 강수량에 영향

베트남 같은 경우 이미 지난 4월부터 폭염에 시달리며 하노이, 호찌민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고온 기록이 새롭게 경신되었다. 지나친 고온으로 인해 저수지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폐사한 물고기가 부패하여 심각한 악취를 유발하고 있다. 빠르게 수습이 되지 않으면 수질오염이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베트남 남부 지역은 지속적으로 이어진 고온과 강수량 부족으로 인해 저수지와 하천에 물이 말라버리는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고 있다. 폭염은 기본적으로 대기가 뜨거워지는 것이고 뜨거워진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포함하려 하기 때문에 땅에서 계속 대기로 물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비가 충분히 오지 않은 상태에서 폭염이 지속되면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걱정은 현재 베트남에서 가뭄이 심한 지역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커피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특히 인스턴트커피의 주원료인 로부스타 원두 같은 경우 이곳이 전 세계 1등 생산지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달달한 인스턴트커피의 가격이 설마 오를까 내심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인도, 베트남을 넘어 중국에서도 고온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베이징은 연일 40도를 넘는 날씨를 기록하여 일사병,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자들이 응급실로 대거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산둥성 지역은 지표기온이 75도까지 상승하여 신발을 신지 않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라 반려동물의 외출을 자제하라는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6월 같은 경우 중국 화북평원 지역은 밀을 수확하는 시기이기에 지표기온의 상승은 매우 심각한 지역기후 영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후변화 분야 국제 학술지 중 하나인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실린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중국 화북평원의 여름철 지표기온 상승은 한반도 여름장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본인의 연구임). 특히 한국으로 북상하는 장마를 강화하여 비를 더 뿌리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중국 북부 지역에서 현재 진행 중인 폭염은 단순히 중국의 기온상승을 넘어 한국의 여름철 강수량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기후 정확한 예측은 어려워

6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성지순례를 위해 방문한 순례객 1300명 이상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름다운 해양 관광으로 유명한 그리스에서는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관광객이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어떤 관광객도 돌아오지 못할 관광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염이 가진 또 하나의 무서움이다.

지면 관계상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염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유럽, 북미, 그리고 남미까지 그 어느 대륙 하나 빠짐없이 혹독한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재작년 한 방송사에서 제작했던 기후변화 다큐멘터리의 우려 그대로 붉은 지구가 되어버렸다.

정리해보면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폭염은 단순히 고온만 경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량, 에너지, 보건, 수자원,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식량 같은 경우 폭염으로 인한 식량 수급의 불균형은 다른 나라의 밥상물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한 국가의 물가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금리조정 같은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조절하는 시도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국가의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물가에 영향을 끼치면 그 어떤 정책으로도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도미노 효과이다.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의 강도가 강해지고 지속일수가 늘어나면 늘 가장 크게 우려되는 부분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대응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폭염이 더 강해질 것은 자명하다. 폭염뿐만 아니라 가뭄, 집중호우, 태풍 등 이상기후라고 불리는 이벤트의 강도가 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이상기후가 정확히 몇년, 몇월, 며칠, 몇시에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기상청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실력 좋은 한국 기상청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상기후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강해지고 늘어날 것이라는 큰 흐름(경향성)은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피해를 줄일 수 있게 잘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반도체 패권, 수명 연장, 치매 극복, 암 정복 등 다양한 난제를 국가의 최우선 어젠다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모두 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삶의 터전이 붕괴된다면 새로운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이상기후는 한 국가의 미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것이 이상기후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도미노 효과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의 최우선 어젠다로 격상시켜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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