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서 고립, 대피 왜 어려웠나…입구에서 발화·작은 창문

안상우 기자 2024. 6.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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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공장 건물에서는 당시 70명 가까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시작된 곳은 공장 3동 건물 2층입니다.

2층에는 사무실과 배터리 보관소, 연구소가 있었는데, 처음 불이 시작된 곳은 배터리 보관소 입구 근처였습니다.

불이 난 3동에는 67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52명이 2층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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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불이 난 공장 건물에서는 당시 70명 가까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50명 정도가 2층에 있었고, 화재 희생자 대부분은 2층에서 발견됐습니다.

대피가 어려웠던 이유는 안상우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불이 시작된 곳은 공장 3동 건물 2층입니다.

2층에는 사무실과 배터리 보관소, 연구소가 있었는데, 처음 불이 시작된 곳은 배터리 보관소 입구 근처였습니다.

복도 건너편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화재 직후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려 대피했습니다.

[공장 직원 : 사무실에 이쪽이 다 창문이에요. 여기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다 이리로 뛰어내린 거죠.]

하지만 불이 시작된 배터리 보관소에 있던 직원들 다수는 대피하지 못했습니다.

입구 근처에서 순식간에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입구 옆 계단을 이용해 탈출하기 어려웠던 데다, 반대쪽 창문도 크기가 작아 깨고 탈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로 숨진 22명 모두 2층 배터리 보관소에서 발견됐습니다.

[소방관 : 여기서 불이 났으니까 (계단으로) 못 가는 거죠. 반대쪽으로 대피한 거죠.]

불이 난 3동에는 67명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52명이 2층에 있었습니다.

특히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작업을 했는데, 공장 내부 구조가 익숙하지 않았던 만큼 대피에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걸로 추정됩니다.

결국 1989년 16명이 숨진 전남 여수 럭키화학 폭발 사고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역대 최악의 화학공장 사고로 기록됐습니다.

(영상취재 : 양두원, 영상편집 : 최은진)

안상우 기자 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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