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좀비` 기관장 양산… 무너진 임기제

이준기 2024. 6. 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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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계 6개기관 후임 선임 안돼
1년 가까이 어정쩡하게 직유지
안정화 훼손·조직 이완 등 초래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과 직할기관이 모여있는 대덕특구 전경

후임 기관장 선임이 지연되면서 임기가 끝난 기관장이 수개월 이상, 심지어 1년 가까이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정상적 기관 경영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임기 만료 후에도 새 기관장 선임 때까지 직(職)을 수행토록 하는 현행 규정이 오히려 기관 경영 안정화 훼손과 불요불급한 예산 낭비, 조직 이완 등 각종 폐해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계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들에서 두드러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를 비롯해 NST 소관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직할·연구기관 등은 각 기관별 정관을 통해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후임 기관장 선임 시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이 제도는 몇 차례 정관 개정을 거쳐 NST와 25개 출연연의 경우 2021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NST는 정관 제11조에 의거 기관장을 포함한 상근 임원은 임기 만료 후라도 후임자가 취임할 때까지 임원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 시행 4년 전인 2017년부터 NST와 25개 출연연은 3년 임기가 끝난 기관장은 후임 기관장이 선임되지 않았더라도 임기 만료와 동시에 퇴직하는 규정을 적용해 왔다.

NST 관계자는 "후임 기관장이 선임될 때까지 기관장 공백 없이 안정적인 기관 운영을 이어가기 위한 취지로 국회의 국감 지적사항으로 2021년 상반기부터 현행 제도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출연연 중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 등 6개 기관은 기관장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 기관장이 선임되지 않아 '임시 기관장' 꼬리표를 달고 기관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NST에서 우주항공청 소속으로 이관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도 원장 임기가 각각 3월, 4월에 만료됐지만, 새 이사회가 꾸려지지 않아 적어도 9월까지 임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과기정통부 직할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도 마찬가지로, 기관장 임기가 각각 1월, 2월 끝났지만 4개월 이상 임기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부 산하기관들도 임기기 끝난 기관장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동서발전·한국남동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중부발전 등 한국전력공사 산하 5개 발전사 사장의 임기는 지난 4월 25일부로 일제히 만료됐다. 하지만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기존 기관장들이 직무를 이어가고 있다. 동해 석유·가스전 발견으로 주목되는 한국석유공사의 김동섭 사장 임기도 지난 7일 끝났다. 강원랜드·대한석탄공사는 지난해 말 사장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나 6개월째 공석 상태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한국부동산원 수장 역시 임기가 만료됐으나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고 있다.

임기가 종료된 기관장들은차기 기관장이 올 때까지 소위 '임시 기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주요 현안과 이슈 등에 적극 대응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신규 사업 추진을 비롯해 인사, 조직, 예산 등 내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제약이 많다. 언제 떠날지 모를 상황에서 기관장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어 조직 운영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연구와 행정 업무에서 혁신할 추동력을 잃게 될 경우 연구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커진다. 가뜩이나 팍팍한 기관 예산에 기관장 인건비와 운영비, 수행경비, 기타 비용 등 재정적 부담도 생긴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기관장 인선이 길어야 3개월 정도 늦어질 경우에는 임기 종료된 기관장이 일시적으로 기관 경영을 맡아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장기간 기관장 선임이 지연되는 상황에서는 현행 제도의 부작용과 폐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어차피 새 원장이 오면 기관 경영을 다시 짜야 하는 만큼 임기 만료된 기관장이 어떻게 리더십을 갖고 임기 때처럼 기관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며 "과학기술계에서 기관장 늑장 선임이 장기화되고,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임기 만료와 함께 기관장이 물러나고, 부원장이 대행체제를 하는 게 기관 경영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 방안이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NST는 기관장 임기제 부작용과 관련된 연구현장의 의견이 속속 제기되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준기·이민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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