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환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양육지원 넘어 구조적 대응 집중” [인터뷰]
예산 47조 중 직결된 사업은 절반 수준
87%인 20조5000억 양육 현금성 지원
관심 높은 일·가정 양립은 8.5%에 그쳐
일자리·사교육 등 구조적 대응은 미흡
양육·주거 등 3대 핵심 분야 초점 둬야
생명·가족의 가치 등 인식 변화도 중점
세제·주거 대책 등 정책 영향 모니터링
인구정책 따로 떼어내 심층 평가 방침
앞장선 지자체·기업엔 포상도 검토 중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는 날까지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지난주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 이런 내용을 빼곡히 담았다. 저고위는 저출산·고령화 정책의 컨트롤 타워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고 주형환 부위원장은 지난 2월 취임했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산업부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 주 부위원장은 지난 21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정부의 저출생 관련 지출 항목을 재검토하는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정부가 맞닥뜨린 심각한 도전에 대응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새로운 대책으로 국가 위기 추세를 막아 세우겠다는 전략이다. 주 부위원장은 정책 수요자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모니터링은 물론이고 출생률이 높은 지역에 대한 추가 지원과 저출생 대책에 앞장선 기업에 대한 포상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 부위원장과 일문일답.
“저출생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저출생 현상은 절대적 수준과 상대적 속도 면에서 유례가 없다. 합계출산율은 1980년대 초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82년 2.11명)과 비슷했으나 지금은 평균(1.58명)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2명, 출생아 수가 23만명에 불과했다. 이 속도로 가면 2052년에는 출생아 수가 10만명대로 떨어진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0∼4세 유아 인구가 북한보다 적다. 합계출산율은 하락 후 소폭 회복될 전망이지만, 2052년에는 10만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대책은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3개 분야에 집중됐는데.
“과거 대책들이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를 통렬히 반성했다. 저출생 문제의 직접적인 애로 사항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고, 구조적인 저출생 문제를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가정 양립 분야에 전체 예산의 8.5%밖에 쓰지 않았고, 대부분 양육 지원에 집중했다. 그동안은 좋은 일자리 부족, 수도권 집중, 사교육비 문제 등 구조적 대응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이번 대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결혼과 출산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인 3대 핵심 분야에 집중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 수도권 집중 억제, 생명의 가치와 가족의 소중함을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변화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고민한 대목은.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 수립 후 20년간 저출생 정책 추진했지만 합계출산율이 가파르게 하락한 원인 파악에 중점을 뒀다. 정책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가장 고민했다. 일·가정 양립 분야에서는 육아휴직, 휴가,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 걱정 없이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부모가 맞돌봄을 할 수 있도록 동료 업무 지원금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확실한 지원을 통해 육아휴직을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양육 부분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0∼11세 영유아부터 초등학생 양육 부모까지 누구나 이용 가능한 돌봄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주거 부분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메리트가 되도록 주택 공급 확대와 자금 지원 등을 포함했다. 결혼특별세액 공제를 도입해 결혼 단계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정책 수요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간담회와 대국민 인식조사, 정책공모전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대책에 반영했다.”
―정책 평가 모니터링은 어떻게 진행하나.
“저출생 문제의 애로 사항에 대한 지출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저출생 관련 예산이 47조원이라고 하는데,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살펴보니 저출생에 직결된 사업은 23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그중 87%인 20조5000억원이 양육 현금성 지원이고, 국민이 개선해달라고 하는 일·가정 양립은 8.5%인 2조원에 불과했다. 특히 현장의 실행 주체인 지자체와 기업의 동참을 유인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예산도 재구조화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 지방 교육재정 등 추가적인 재원을 활용해 미진한 부분에 대한 재정 지원을 집중하고, 효과가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성과 중심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결혼 관련 세제와 주거 대책에 신경을 쓴 것 같다.
“주택 관련 대책은 크게 네 가지 측면으로 구성된다. 첫째, 신생아 우선 공급을 확대해 종전의 7만호에서 12만호로 늘렸다. 둘째, 신생아 특례 대출의 소득 요건을 폐지하고 대출 기간 중 출생아 수에 따라 이자를 인하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셋째, 출산 가구에 대한 신생아 특별공급 제도를 도입하여 생애 한 번 더 특공 혜택을 드린다. 넷째, 임대주택 지원을 강화하여 소득 자산 기준 없이 장기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임대 아파트에서도 출산 후 넓은 주택으로 옮길 수 있도록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다. 일각에선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만 지난해 결혼이 19만3000건, 출생아는 23만명이니 대상이 특정된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국토교통부와 협력해 이번 대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모니터링하고 있다.”
―육아휴직 의무화 등 보다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육아휴직은 신청 시 의무적으로 허용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 500만원이 부과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눈치가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대책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통합해 신청하고, 2주 이내에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허용되도록 했다. 또한, 단기 육아휴직제를 도입하여 연 1회 2주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250만원으로 올려 소득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육아휴직을 부부가 동시에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은 어떤가.
“중소기업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신 대체인력 지원금 제도를 도입하고, 필요한 경우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만 이행 과정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추가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재정 여건도 감안해 균형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소멸위기를 맞고 있는 지자체가 적잖다. 중앙 정부와 호흡을 맞춰야 할 것 같다.
“민간 기업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경총·상의 등 경제 6단체와 경제단체 민관협의체를 매월 운영해 가족 친화적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프로그램과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가족 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해 대체인력 지원금, 유연 근무 장려금, 컨설팅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인구의 날(7월11일)에 대대적인 포상을 시행할 계획이다.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기업들도 저출생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기업들도 현재는 인력 미스매치 수준이지만, 앞으로 인력 부족 시대가 온다. 2000년 63만명, 2005년 43만명, 지난해 23만명이 태어났다. 이들이 사회에 배출되면 기업들도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외국도 글로벌한 저출생 현상을 겪고 있다. 개발도상국도 출생률이 떨어진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데려오는 문제만 봐도 일본, 이스라엘, 캐나다 등 여러 나라가 경쟁을 벌이는 실정이다. 이민으로 해결하려 해도 이미 이민전쟁이 시작됐다. 젊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일·가정 양립, 양육 친화적 환경, 인사와 노무를 관리하지 않고서는 유지가 어렵다.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1961년 출생 ●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일리노이대 회계학 석사, 경영학 박사 ●행정고시(재경직) 26회 ●세계은행 자문관 ●미주개발은행 수석자문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부단장(이명박정부)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박근혜정부) ●기획재정부 1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서울대·세종대 석좌교수
대담=이천종 정치부장, 정리=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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