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직구 금지…껍데기 규제로는 안전 지킬 수 없다 [왜냐면]

한겨레 2024. 6.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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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5월16일 80개 품목에 달하는 국가통합인증마크(KC) 미인증 제품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려 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하였다.

해외 직구 금지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중국산 저가 제품을 대량 수입하면서 소비자와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해외 직구 금지 대책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다고 직구 자체를 막으려 했다.

졸속으로 만든 껍데기 규제로는 국민의 규제에 대한 저항과 내성만 부르고 안전을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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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이정원 국무2차장이 지난 5월1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외직구 금지 철회 관련 추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영섭 |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정부는 지난 5월16일 80개 품목에 달하는 국가통합인증마크(KC) 미인증 제품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려 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하였다. 해외 직구 금지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중국산 저가 제품을 대량 수입하면서 소비자와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대책은 발표되자마자 싼값에 해외 직구를 하는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대책을 철회하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정부의 주도로 압축성장을 해온 우리나라는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현상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안전관리 분야에서 더 심하다. 규제가 많을수록, 강할수록 효과적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안전을 강화한답시고 덧씌워 온 규제는 몇 가지 면에서 과하거나 현실성이 없는 것이 많다.

첫째,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을 태운다. 해외 직구 금지 대책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다고 직구 자체를 막으려 했다. 사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위험을 제거한다는 안전관리의 기본을 몰각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금 등 특정 위험작업의 사내 하도급을 금지한다. 파견법은 직접 제조하거나 건설하는 업무에 근로자 파견을 금지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는 사내 하도급이나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에 도급인에게 도급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지원하도록 하고,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데 힘쓴다.

둘째, 속 빈 강정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근로자 안전교육을 의무 지우면서 교육 시간, 교육 내용, 강사 자격을 일일이 정한다. 현장에서는 교육의 질은 뒷전이고 참석자 서명을 받고 사진을 찍어 규정을 지켰음을 증명하는 서류 작업에 몰두한다. 다른 나라는 사업주에게 교육·훈련의 의무는 부여하되 그 방법은 자율에 맡긴다. 사업장마다 업종, 직종, 설비 등이 다르고 빠르게 변해서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셋째,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경우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는 건설공사 발주자에게 공사 계획 단계에서 기본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도록 의무 지운다. 참으로 황당하다. 설계조차 안 된 상태에서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를 발주자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영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정작 영국은 발주자에게 안전대장을 ‘작성’하라고 하지 않는다. 설계자와 시공자가 안전대장을 작성하는지 발주자는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일찍이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했다. 1970년 구성한 로벤스위원회는 2년간의 조사와 연구 끝에 과하고 경직된 규제가 사고방지에 효과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정부와 의회는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확보의 목표는 부여하되 그 실현 방법을 자율에 맡기는 목표 기반 규제로 혁신적으로 바꾸었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영국은 세계 제일의 안전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규제 만능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규제로 급하게 처방하고 넘어가려는 정치적 시도가 흔하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건수가 늘자 고령자 운전 제한을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그렇다. 안전 규제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님을 다시 새겨야 한다. 졸속으로 만든 껍데기 규제로는 국민의 규제에 대한 저항과 내성만 부르고 안전을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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