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의 독창적 예술 세계
조각과 회화·아카이브 포함 30여점 국내 첫 전시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이달 25일부터 9월 22일까지 90일간 특별전 '김윤신: 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를 개최한다. 김윤신 작가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이응노 화백과 인연을 맺었다. 이번 전시는 김 작가의 조각과 회화, 아카이브를 포함한 50점의 작품 가운데 30여 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자연주의 철학과 독창적인 예술 언어를 겸비한 김윤신 작가의 세계관을 내밀하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다.
◇프랑스 파리와 아르헨티나
올해는 김윤신과 이응노가 파리에서 만난 지 60년째가 되는 해다. 김윤신은 1964년 프랑스 국립고등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면서 이응노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응노는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던 중이었다. 이응노는 김윤신에게 나뭇조각을 깎고 다듬는 기술을 배웠다. 이응노가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기 전까지 4년간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만남을 이어갔다. 이응노와 김윤신 사이에서 예술적 유사성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응노와 김윤신은 모두 조각과 회화라는 매체를 이등분하지 않고 상호 보완되도록 작업했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실험 속에서 각각의 매체가 지닌 한계를 돌파하려는 유연한 예술 세계를 가꿨다. 이후 20년이 지난 1984년, 김윤신은 조카를 만나러 아르헨티나에 들렀다가 그곳의 풍요로움에 매료돼 터를 잡았다. 그가 자연주의에 기반한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때의 영향이 크다. 김윤신은 자신의 예술 뿌리를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고 설명한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하며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가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김윤신은 조각의 역시 나무에 정신을 더하고(합), 공간을 나눠(분), 온전한 하나(작품)가 되는 과정으로 여긴다. 이응노 예술의 뿌리를 이루는 '자연적 추상성'과 맞닿는 지점이다. 이에 이번 전시는 김윤신이 자연적 추상성을 바탕으로 형성한 독자적인 시각언어를 생애 연대기별로 주목한다.
◇4전시장: 생명의 역동(1960-1980년대)
김윤신은 1964년 프랑스 국립고등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했으나 갑작스러운 지도교수의 별세로 석판화를 배우게 된다. 이 시기 그의 석판화엔 도불 이전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탐구했던 역동적인 조형성이 평면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아카이브로 남은 당시 조각을 보면, 선으로 철을 이어 붙여 평면을 만들고, 이 평면을 다시 용접해 타원의 구 형상을 중심축으로 한다. 이 조각들은 일정한 운동성을 지니고 타원 구조를 중심으로 평면의 철조가 다시 공간으로 뻗는 형상을 이룬다. '예감'(1965-1967) 연작과 '역동'(1970년 중후반대) 연작은 조각에서 탐구한 방향성을 다시 평면으로 가져와 입체와 평면을 넘나드는 역동성을 실험한 최초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입체와 평면을 아우르며 자신의 예술 전반에 걸쳐 생명에 대한 염원과 조화를 시각화했다. 같은 시기 제작한 '성좌의 신화'(1972) 연작과 '기원 쌓기'(1970년대), '십자가'(1981) 등이 그 예시다. 특히 '기원 쌓기'는 민간신앙의 믿음이 돌탑과 닮은 형태와 조화롭게 구현돼 그가 뜻한 내적 의미가 조각의 외적 형태와 합일된 완전한 형상을 보인다. 이응노의 '토템' 연작과 유사한 조형성을 공유하는 '기원 쌓기'는 김윤신의 생명에 대한 염원을 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1970년대 이후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으로 이어지는 자연적 추상의 세계로 확장된다.
◇3전시장: 합이합일 분이분일(1980-2010년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김윤신은 남미의 광활한 자연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예술 세계에 접목했다. 케브라초, 알가로보, 세드로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는 그에게 작품 재료 그 이상이었다. 김윤신에게 조각 행위는, 나무를 절단해 그 생명력을 끊는 게 아니다. 되레 생명의 숨을 틔워 공간-자연-절대자와 포개 맞닿게 하는 것이다. 자연과 조각 모두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이 작업에서 그는 자신 또한 기꺼이 포개지는 합일의 과정을 반복한다. 바로 김윤신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이다. 이 시기 그의 회화는 남미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조형성과 색채가 두드러진다. 수직적 시각으로 타자의 문화를 탐닉하는 게 아니라 대지 만물의 생명력을 평등한 시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생명의 잉태'(2022), '내 영혼의 노래' 연작과 같은 작품에서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진다. 특히 '내 영혼의 노래 2009-No.236'에서 보이는,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여러 겹의 원형이 화면 밖으로 나가는 듯한 방향성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전부터 실험했던 생명의 역동적 표현과 남미 문화의 영향이 조화롭게 구성된 화면을 보여준다.
◇2전시장: 내 영혼의 노래(2010-현재)
2010년대 이후 김윤신은 조각과 평면의 경계를 흐려 합일을 이루는 과정을 시도한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조각에서 회화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기하학적 문양과 화려한 색채로 뒤덮인 회화 조각은 입체 형태를 띤 회화, 회화적 표현의 조각을 내세워 조각과 회화가 김윤신의 예술 속에서 교감하는 독특한 미감을 보여준다. 이 시기 조각에는 초창기 작품인 '성좌의 신화 시리즈'의 화면처럼 작은 원형이 움터 퍼져나가는 듯한 필치와 풍부한 색조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내 영혼의 노래 2015-No.49'(2015) 같은 회화에서는 원형의 조형성이 극대화돼 생명-영혼이 물속에서 흐르는 듯한 율동감을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2023)에선 마치 평면을 조각하듯 무수한 선으로 평면을 공간으로 이끌어내는 것 같은 화면을 구성한다. 현재 김윤신의 예술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 생명과 절대자, 순간과 영원 같은 이분법적 가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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