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구교환 “‘독립’과 ‘상업’ 구분 거부···영화를 찍을 뿐”
“아아, 안녕하세요? 러시아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리현상’(영화 <탈주>의 극중 이름)입니다.”
지난 20일 오후, 마이크를 든 배우 구교환(42)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 모습을 드러내자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낮 최고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 그는 모처럼의 인터뷰를 위해 긴소매 트위드 재킷을 차려입었다고 했다. “멋있나요? 뵐 기회가 잘 없으니까요.”
영화 <탈주>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구교환은 장난스럽게 등장해 능청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진지함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시원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적확한 표현을 찾느라 오랜 시간 고민했고, 때론 기자에게 역질문도 던졌다. 어떤 질문에는 답변을 미루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인터뷰 상대임은 틀림 없었으나, 영화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태도가 엿보이는 시간이었다.
<탈주>는 꿈을 위해 탈주를 시작한 북한 병사 규남(이제훈)과 그를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목숨을 건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2023)의 이종필 감독이 연출했다.
구교환은 한때 세계 콩쿠르를 휩쓸던 피아니스트였지만 집안의 뜻에 따라 꿈을 접고 군인이 된 현상을 연기했다. 현상은 무채색인 군인들 가운데 어딘가 다른 색깔을 가진 인물이다. 립밤으로 입술을 촉촉하게 하고, 머리는 포마드를 발라 반듯하게 넘긴다. 총소리에 귀를 막고 “아, 시끄러워”라고 반응하는 한편 클래식을 사랑한다. <모가디슈>의 ‘태준기’가 투철한 국가관으로 움직이는 보위부 소속 참사관이라면 현상은 꿈을 잃은 소년처럼 보인다.
구교환에게 현상은 ‘왜 이토록 규남의 탈출을 막으려 하는지’ 궁금한 인물이었다. “현상은 포마드나 립밤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각’을 잡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상은 그것으로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려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현상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뀌어요. 지금도 계속 궁금한 사람으로 남겨져 있어요.”
영화는 94분의 러닝타임을 쉴틈없이, 매끄럽게 질주한다. 이야기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두 주연 배우의 역할이 크다. 이제훈과 구교환의 만남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제훈은 2021년 한 시상식에서 “구교환 배우와 같이 연기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구교환은 시상대 위 이제훈을 향해 ‘손 하트’로 화답했다. <탈주> 역시 먼저 캐스팅된 이제훈이 상대역으로 구교환을 제안하면서 출연이 성사됐다.
구교환은 이제훈의 연기에 매번 감동한다고 말했다. “메이킹 필름만 봐도 이제훈 배우가 장면 장면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몰입도나 집중력이 대단하죠. 만화 <슬램덩크>의 ‘김수겸’ 같은 매력이 있달까요?” (구교환은 <슬램덩크>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로 ‘양호열’을 꼽고는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에게 실례”라며 부끄러워했다.)
구교환은 <꿈의 제인>(2016), <메기>(2019) 등 작품으로 잇따라 주목받으며 독립 영화계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불과 몇 년 사이, 한국 상업 영화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얼굴이 됐다. 그러나 그는 ‘독립’과 ‘상업’의 구분을 단호히 거부했다.
“저는 ‘독립영화 시절’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그렇게 분리하는 것은 외부의 시선이고, 저는 영화를 찍을 뿐이에요. 영화를 처음 할 때부터 지금까지 늘 같은 태도로 임하고 있어요. 저를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을 계속 만나는 게 좋습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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