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명령자 못 찾은 5·18조사위 종합보고서…광주는 ‘냉담’
부상자·유족들 분열시키는 신군부 공작 드러나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가 4년6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광주시민 무장 시점, 광주교도소 습격 등 왜곡을 부추길 수 있다는 개별 사건 조사보고서의 일부 내용은 바로잡았지만 주요 과제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는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5·18조사위는 24일 서울 중구 저동 5·18조사위 대강당에서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그동안의 조사 성과와 과제, 국가에 대한 권고 등을 발표했다. 2019년 12월26일 출범한 5·18조사위는 지난해 12월26일까지 조사 활동을 마치고 이날 전자문서 형식의 종합보고서를 펴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했다.
5·18조사위가 새롭게 규명한 사실을 보면 5·18 최초 총상 사망자는 1980년 5월19일 야간에 숨진 김안부(당시 35살)씨로 밝혀졌다. 1995년 검찰수사에서 김씨는 타박사로 확인됐다. 또 계엄군의 최초 집단발포로 알려진 1980년 5월20일 광주역 앞 발포로 인해 7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조사에서는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라북도를 포함한 5·18 민간인 사망자는 166명으로 집계됐다. 총상 사망자 135명 중 84명이 상체 부위에 총을 맞은 것으로 나타나 발포하려면 하복부를 겨냥하도록 한 ‘자위권 수칙’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민간인 사망사건 대부분은 광주 외곽지역에서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다. 5·18조사위는 1980년 5월21일 광주 도심에서 철수한 계엄군들이 광주시위가 타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과정에서 학살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헬기 사격과 관련해선 500엠디(MD) 헬기가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사격을 했으며, 코브라 헬기(AH-1J)는 사격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유에이치-1에이치(UH-1H) 헬기 또한 전일빌딩에 대한 사격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부상자와 유족들을 분열시키기 위한 신군부의 공작도 문건으로 드러났다. 전두환이 전남도지사에게 (망월동) 묘지 이전 검토를 지시하고 505보안부대, 전라남도 등 군·관·민 합동으로 유족 묘지 이전 대책(비둘기 시행계획)을 수립해 공작 활동을 추진한 사실이 기록물로 밝혀졌다.
전국적으로 5·18 피해자에 대한 수배·학사징계·해직·강제징집 등의 인권탄압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며 5·18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불법연행·구금·구속되고, 조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개별 사건 조사보고서에서 오전인지 오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힌 광주시민의 나주지역 파출소 피습 시점은 종합보고서에서 오후 1시30분 이후로 지목했다. 이는 계엄군이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명분으로 내세웠던 시민군 선제 무장설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5·18조사위는 당시 사진을 분석한 결과 시위대가 몽둥이와 쇠파이프를 들고 있으나 카빈총 등을 들고 있는 모습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집단발포의 또 다른 명분이었던 계엄군의 장갑차 사망 사건은 계엄군 쪽 장갑차에 의한 사고라고 명확히 했고 광주고법의 전두환 회고록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판결문을 근거의 하나로 제시했다. 또한 도청 앞 집단발포는 상부의 명령에 의한 조직적 행동으로 보고 장갑차 사망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습격설에 대해서도 제3공수여단의 외곽 봉쇄 작전에 의한 피해로 명확히 했다. 그동안 극우세력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다 숨졌다고 주장한 임아무개씨, 고아무개씨 등은 광주를 방문했다가 담양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엄군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전후 정황을 설명했다.
여전히 미흡한 조사 결과도 있었다. 5·18조사위는 1980년 5월23일 오후 3시 주남마을 인근에서 의료 봉사원 장재철씨가 계엄군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씨 유족은 다음날 주검을 도청으로 옮겼다고 증언했고, 당시 광주 동구청 상황일지에는 ‘28일 구급차 차내 1명 사망자 방치’라고 나와 있어 다른 사망자가 있다는 의혹이 나온다.
성폭행 피해 사건은 모두 52건의 피해 의혹 사건을 확보했지만, 이 중 피해자 동의를 얻은 19건만 조사해 16건을 진상규명으로 결정했다. 일부 사건은 피해자가 지목한 가해자를 찾아 소속 부대를 특정했지만 가해자가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처벌을 끌어내지 못했다.
5·18조사위는 남은 과제로 ‘발포 경위와 책임 소재’ ‘은폐·왜곡·조작’ ‘희생자 암매장 의혹’ ‘군인과 경찰의 사망·상해’ 등을 제시하며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25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겠다고 밝힌 5·18조사위가 태생적 한계가 있는 종합보고서를 들고 무슨 면목으로 오월 영령을 뵙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대통령과 국회는 왜곡·폄훼 소지가 다분한 개별 직권조사보고서를 폐기하고 조사위 활동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미완으로 끝난 5·18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조사위는 종합보고서 2천부, 개별 보고서 1천부, 진술본 1천부, 종합보고서 영어 번역본 500부를 인쇄 발부해 배포할 계획이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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