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핑퐁게임’ 못 벗어나는 연금개혁 [심층기획]

김나현 2024. 6. 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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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율·소득대체율’안 불발 후
시작점·방향·주체 등 인식차 커져
與 “특위 구성을” 野 “원점 재논의”
與野 기싸움에 22대 국회서도 연금개혁 ‘불투명’
“명분 싸움 할 시간 지나… 신뢰 회복부터 해야”
22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또다시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1대 국회 막바지에 가까스로 타협선에 다다른 ‘보험료율(내는 돈) 13%·소득대체율(받는 돈) 44%’ 안이 불발된 이후, 여야는 논의의 시작점을 비롯해 개혁의 방향성·주체 등을 두고 인식 차가 되레 커진 것으로 파악됐다.

◆연금개혁 두고 여야 ‘핑퐁게임’

국민의힘은 연금개혁의 공을 22대 국회로 넘기며 “정쟁과 시간에 쫓긴 어설픈 개혁보다 22대 첫 번째 정기국회(9월1일부터 100일)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추경호 원내대표)”고 약속했다. 이에 여당은 당내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했다. 박수영 연금특위원장은 “7월 중 특위 위원들끼리 답을 만들어 원내·당대표에게 보고드리고 당 입장을 정할까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연금개혁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5일 “22대 국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며 “모수개혁은 이미 합의가 됐으니 처리를 하자”고 촉구했다.

여야 모두 겉으로는 당장에라도 연금개혁을 재추진할 기세이지만, 꽁꽁 얼어붙은 정국 속에서 논의의 시작점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연금개혁 필요성과 시급성에 공감하는 다수의 여론은 개혁안 처리에 속도를 내라고 재촉하지만, 정치권은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윤석열정부 초대 사회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안상훈 의원(여당 연금특위 간사)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구조개혁의 로드맵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21대 타협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며 “원 구성과 무관하게 당장 여야 연금특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도를 낼 수 있는 ‘선(先) 모수개혁’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 남제현 선임기자
반면 민주당은 정부가 개혁안을 내놓지 않으면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1대 타협안에 대해서도 ‘원점 재논의’를 시사했다. 지난 18일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포함한 종합적인 연금개혁 방안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면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진 의장은 통화에서 “정부·여당이 거절한 안을 우리가 왜 계속 받으라 애걸복걸해야 하냐”며 “그 안이 시작점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뉴시스
대통령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야권의 ‘선 모수개혁’ 주장에 대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순차적으로 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연금개혁의 당사자인 청년층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국회 연금특위가 구성되면 청년층 의견을 더 담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구조개혁 등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금특위 18개월 노력 수포로

이처럼 연금개혁의 시작점부터 여야가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22대 연금개혁은 공회전을 거듭할 전망이다. 여야 간 극한 대치가 계속되며 상호 신뢰에 금이 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21대 국회 연금특위는 장장 18개월에 걸쳐 이견을 좁힌 결과, 보험료율(내는 돈)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2055년에 연금 기금이 소진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한시라도 빨리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여야 협상이 성공했더라면 26년 만에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성과를 거두는 셈이었다.

하지만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현행 40%에서 43%(국민의힘)로 올릴지, 45%(민주당)로 올릴지를 두고 협상이 결렬됐다. 국민의힘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해선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민주당은 ‘노후소득보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서다.

21대 국회 임기를 5일 앞두고 민주당 이 대표가 “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 44%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은 ‘구조개혁’을 강조하며 끝내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대결로 연금개혁의 타이밍을 놓쳤다”고 입을 모았다.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김용하 순천향대 부총장(IT금융경영학)은 “연금개혁이 국민 공감대를 얻었고, 노사 및 전문가들 간의 견해차를 좁혀 왔다”며 “이번에 실패한 건 (개혁)안이 없던 것이 아니라, 협치보다 대결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지난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이제원 선임기자
◆여야 간 벌어진 인식 차

연금개혁의 공을 넘겨받은 22대 국회에서 여야는 연금개혁의 방향성을 두고 기싸움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특히 개혁의 우선순위를 두고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급조한 수치 조정(모수개혁)만 끝내고 나면 연금개혁의 동력이 떨어지고 시간만 흐를 것(추 원내대표, 5월26일)”이라며 ‘구조개혁 병행 처리’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꿔 버리자는 것이 혁명 아닌가. 국민의힘이 갑자기 혁명주의자가 된 것인가(이 대표, 6월5일)”라며 ‘모수개혁 우선 추진’을 주장했다.

21대 국회 연금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역임한 김성주 전 의원. 이재문 기자
여당이 강조하는 구조개혁은 국민·기초·퇴직·직역(공무원, 군인 등)연금 등 다층적으로 이뤄진 노후소득보장체계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구체적인 안으로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합하는 방식, 퇴직급여의 일시금 수령을 제한해 연금화하는 방식, 직역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방식, 신(新)·구(舊)연금 분리 등이 꼽힌다. 연금 틀을 새로 짜는 방식이다 보니, 각종 이해당사자의 반발로 사회적 합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개혁으로 평가된다.

여야는 개혁의 주체를 두고서도 엇갈린다. 지난 국회 연금특위 민주당 간사를 맡은 김성주 전 의원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정부가 연금개혁 의지가 있다면 대통령이 강력한 정책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며 “국회는 입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 안이 논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안상훈 의원(국민의힘 연금특위 간사)은 “연금개혁에서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국회뿐”이라며 “정부가 먼저 안을 내면 정쟁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각자의 안을 들고 여야 연금특위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 연합뉴스
◆“여야 신뢰 회복 시급”

이 때문에 22대 국회 내 연금개혁이 불투명하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21대 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을 맡은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사회복지학)는 “소수 여당이 주도권을 복원시킬 능력도, 야당이 여당을 압박해 끌고 가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며 “지방선거·대선이 다가오면 논의가 흐지부지되고, 2028년 정기 재정계산 때에나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여야 모두 연금개혁의 필요성에는 여전히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이 필요하고 모수개혁이 시급하다는 데에도 여야는 동의한다.

지난 국회에서 여야가 소득대체율 인상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유의미했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한 시민대표단을 존중한 결과다. 공론화 과정에서 학습과 토론을 거친 시민대표단 492명 중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1안)’을 선택한 이들이 56%로, ‘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12%(2안)’을 선택한 이들(42.6%)보다 많았다.

김 전 위원장은 “이제 명분싸움 할 시간은 지났다”며 “여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나현·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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