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핑퐁게임’ 못 벗어나는 연금개혁 [심층기획]
시작점·방향·주체 등 인식차 커져
與 “특위 구성을” 野 “원점 재논의”
與野 기싸움에 22대 국회서도 연금개혁 ‘불투명’
“명분 싸움 할 시간 지나… 신뢰 회복부터 해야”
2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1대 국회 막바지에 가까스로 타협선에 다다른 ‘보험료율(내는 돈) 13%·소득대체율(받는 돈) 44%’ 안이 불발된 이후, 여야는 논의의 시작점을 비롯해 개혁의 방향성·주체 등을 두고 인식 차가 되레 커진 것으로 파악됐다.
◆연금개혁 두고 여야 ‘핑퐁게임’
국민의힘은 연금개혁의 공을 22대 국회로 넘기며 “정쟁과 시간에 쫓긴 어설픈 개혁보다 22대 첫 번째 정기국회(9월1일부터 100일)에서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추경호 원내대표)”고 약속했다. 이에 여당은 당내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했다. 박수영 연금특위원장은 “7월 중 특위 위원들끼리 답을 만들어 원내·당대표에게 보고드리고 당 입장을 정할까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연금개혁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5일 “22대 국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며 “모수개혁은 이미 합의가 됐으니 처리를 하자”고 촉구했다.
윤석열정부 초대 사회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안상훈 의원(여당 연금특위 간사)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구조개혁의 로드맵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21대 타협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며 “원 구성과 무관하게 당장 여야 연금특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도를 낼 수 있는 ‘선(先) 모수개혁’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연금특위 18개월 노력 수포로
이처럼 연금개혁의 시작점부터 여야가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22대 연금개혁은 공회전을 거듭할 전망이다. 여야 간 극한 대치가 계속되며 상호 신뢰에 금이 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21대 국회 연금특위는 장장 18개월에 걸쳐 이견을 좁힌 결과, 보험료율(내는 돈)을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2055년에 연금 기금이 소진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한시라도 빨리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여야 협상이 성공했더라면 26년 만에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성과를 거두는 셈이었다.
하지만 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을 뜻하는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현행 40%에서 43%(국민의힘)로 올릴지, 45%(민주당)로 올릴지를 두고 협상이 결렬됐다. 국민의힘은 노후소득보장을 위해선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민주당은 ‘노후소득보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서다.
21대 국회 임기를 5일 앞두고 민주당 이 대표가 “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 44%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실과 여당은 ‘구조개혁’을 강조하며 끝내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대결로 연금개혁의 타이밍을 놓쳤다”고 입을 모았다.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김용하 순천향대 부총장(IT금융경영학)은 “연금개혁이 국민 공감대를 얻었고, 노사 및 전문가들 간의 견해차를 좁혀 왔다”며 “이번에 실패한 건 (개혁)안이 없던 것이 아니라, 협치보다 대결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연금개혁의 공을 넘겨받은 22대 국회에서 여야는 연금개혁의 방향성을 두고 기싸움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특히 개혁의 우선순위를 두고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급조한 수치 조정(모수개혁)만 끝내고 나면 연금개혁의 동력이 떨어지고 시간만 흐를 것(추 원내대표, 5월26일)”이라며 ‘구조개혁 병행 처리’를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꿔 버리자는 것이 혁명 아닌가. 국민의힘이 갑자기 혁명주의자가 된 것인가(이 대표, 6월5일)”라며 ‘모수개혁 우선 추진’을 주장했다.
여야는 개혁의 주체를 두고서도 엇갈린다. 지난 국회 연금특위 민주당 간사를 맡은 김성주 전 의원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정부가 연금개혁 의지가 있다면 대통령이 강력한 정책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며 “국회는 입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 안이 논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안상훈 의원(국민의힘 연금특위 간사)은 “연금개혁에서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국회뿐”이라며 “정부가 먼저 안을 내면 정쟁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각자의 안을 들고 여야 연금특위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22대 국회 내 연금개혁이 불투명하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21대 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을 맡은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사회복지학)는 “소수 여당이 주도권을 복원시킬 능력도, 야당이 여당을 압박해 끌고 가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며 “지방선거·대선이 다가오면 논의가 흐지부지되고, 2028년 정기 재정계산 때에나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여야 모두 연금개혁의 필요성에는 여전히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이 필요하고 모수개혁이 시급하다는 데에도 여야는 동의한다.
지난 국회에서 여야가 소득대체율 인상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유의미했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한 시민대표단을 존중한 결과다. 공론화 과정에서 학습과 토론을 거친 시민대표단 492명 중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1안)’을 선택한 이들이 56%로, ‘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12%(2안)’을 선택한 이들(42.6%)보다 많았다.
김 전 위원장은 “이제 명분싸움 할 시간은 지났다”며 “여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나현·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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