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김정은의 리무진, 나발니의 도시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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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의 북한 방문이 만든 풍경은 시종일관 기이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푸틴을 기다리던 김정은은 몹시 피곤한 얼굴이었다.
김정은과 푸틴이 러시아산 아우루스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번갈아 운전대를 잡는 장면은 유독 씁쓸했다.
푸틴의 정적이었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의문사하기 직전까지 간절히 원했던 것이 '한국산 컵라면'이었다는 사실은 북·러 정상이 탄 고급차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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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의 북한 방문이 만든 풍경은 시종일관 기이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푸틴을 기다리던 김정은은 몹시 피곤한 얼굴이었다. 평양시민 수만 명은 '지각대장' 푸틴에게 손을 흔들기 위해 날밤을 새웠고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씩 고역을 치렀다.
푸틴은 정상회담 이후 언론 발표 때 '동맹'이라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은 열심히 "동맹이 복원됐다"고 외쳤다.
북한은 정상회담 다음 날 북·러 조약 전문을 혼자서만 공개했다. 공개된 조약의 4조에는 북·러 군사동맹이 28년 만에 부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푸틴은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상적인 정상외교에서는 모두 나오지 말아야 할 모습들이었다.
김정은과 푸틴이 러시아산 아우루스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번갈아 운전대를 잡는 장면은 유독 씁쓸했다. 두 지도자가 한 차량에 탑승해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모습은 정상외교에서 흔히 '완벽한 동맹'의 메타포로 쓰인다. 과거 한미, 미·일 정상도 미국 방문 때 캠프 데이비드에서 함께 골프 카트에 탄 사진을 공개해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그래서 북·러 정상이 복원된 군사동맹 상징물로 러시아제 아우루스 차량을 선택한 것은 고약하지만 분명한 메시지였다.
푸틴의 정적이었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의문사하기 직전까지 간절히 원했던 것이 '한국산 컵라면'이었다는 사실은 북·러 정상이 탄 고급차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나발니는 러시아 국민음식 반열에 오른 '팔도 도시락면'의 이름난 마니아였다. 그는 도시락면을 여유롭게 먹기 위해 교도소 내 식사시간 제한을 폐지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뜨끈하고 얼큰한 컵라면 한 그릇의 소박한 자유를 위해 싸웠지만, 권력은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무기와 갈등이 늘어날수록 국민의 식탁은 기울고 안온한 일상은 사라진다. 김정은과 푸틴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김성훈 정치부 kokkir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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