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르게 일하겠음”…공장서 숨진 19살 인생계획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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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6개월 만에 전북 전주시의 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살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이 공개됐다. 그는 일본어와 영어를 배우고 싶어 했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24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지난 16일 전주 팔복동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ㄱ씨의 생전 메모장을 공개했다. 전남 순천시의 한 직업계고를 다니던 ㄱ씨는 지난해 11월 이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온 뒤 다음 달부터 생산팀에 입사해 일해왔다.
ㄱ씨의 메모장에는 자기 계발, 회사 생활, 저축 등 미래에 대한 목표가 세세히 담겨있다. ㄱ씨는 2024년 목표로 ‘남에 대한 이야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운동하기’, ‘미술·사진 등 예체능 계열 손대보기’ 등을 적었다. 친구들에게 돈을 아끼지 말고 사진을 많이 찍어두자는 목표도 덧붙였다.
인생 계획으로는 ‘일본어, 영어 등 다른 언어 공부하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살 빼기’, ‘사진에 대해 알아보기’, ‘악기 공부하기’ 등을 목표로 삼았다. 일본어, 영어 등을 배우기 위해 독학 기간을 정한 뒤 책을 사고, 인터넷 강의를 찾아보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도 적어뒀다.
특히 ㄱ씨는 쓰임새별로 통장을 분리하고 월급 대부분을 저축해 목돈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었다. 향후 군대에 갔을 때 받는 월급도 고스란히 저축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해서 2027년 2월까지 6000만원을 모으는 것이 ㄱ씨의 목표였다.
메모장에는 “조심히 예의 바르게 일하겠음. 성장을 위해 물어보겠음. 파트에서 에이스 되겠음. 잘 부탁드립니다. 건배”와 같이 신입 사원 환영회를 앞두고 적었을 것으로 보이는 문구도 있었다. ㄱ씨는 “안전하려면 자기가 일한 설비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며 별도로 주의 사항을 적어두기도 했다.
이 같은 생전 메모장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남동생 같은 글씨체라 더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건실한 청년의 죽음에 뭐라고 말을 보탤 수가 없다”, “수첩을 가지고 다니던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그런 어린 (노동자의 죽음에) 심장이 아프다”,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해보고 어린 나이에 (죽다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안타까워했다.
앞서 지난 16일 아침 7시45분 ㄱ씨는 동료들과 아침조회를 마친 뒤 홀로 배관 점검 업무에 나섰다. ㄱ씨는 아침 8시30분쯤 노조 관계자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으나 30분 뒤인 오전 9시 작업반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동료들이 ㄱ씨를 찾아 나섰고 9시15분 심정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ㄱ씨를 발견했다. ㄱ씨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9시55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정밀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3주가 걸릴 전망이다. 입사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유족과 노조는 ㄱ씨가 지난달 50시간에 이르는 연장근무를 한 사실을 근거로 과로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가스 누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사고 당시 2인1조 작업수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회사 쪽은 안전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배관 점검 업무는 육안으로만 진행하기 때문에 2인1조 투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고 당일과 이튿날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가스 누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50시간 연장근로는 “4인3교대로 주 5일 40시간씩 근무했는데, 주중 휴일이 많아 연장근무가 많이 잡힌 것일 뿐 실제로 연장근무를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현장노동자가 360명인 이 공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유족과 노조는 20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주페이퍼에는 공개 사과 및 진상 규명, 안전보건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는 전주페이퍼 특별근로감독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25일 오전 11시에도 전주페이퍼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 및 진상 규명을 재차 촉구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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