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전용 관람이 필요한 이유

한겨레 2024. 6. 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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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자폐성 장애)이 마지막으로 극장에 간 것은 2019년이다.

모닝빵 5개와 계란과자 2개를 준비해 갔음에도 중간중간 아들이 내는 '남다른 소리'를 막지 못했고, '겨울왕국2'를 함께 관람하던 몇몇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눈칫밥을 먹고 난 뒤 더는 아들과 극장에 가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진지하게 아들의 성인기를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에서 중요한 건 '일상을 잘 꾸리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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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ㅣ 장애&비장애 함께 살기
게티이미지뱅크

아들(자폐성 장애)이 마지막으로 극장에 간 것은 2019년이다. 모닝빵 5개와 계란과자 2개를 준비해 갔음에도 중간중간 아들이 내는 ‘남다른 소리’를 막지 못했고, ‘겨울왕국2’를 함께 관람하던 몇몇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눈칫밥을 먹고 난 뒤 더는 아들과 극장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진지하게 아들의 성인기를 준비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에서 중요한 건 ‘일상을 잘 꾸리는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히 먹고 자고 입고 싸는 기본 활동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능력, 외식하는 능력, 미용실에 가는 능력, 극장과 전시관을 이용하는 능력 등이 학령기 동안에 길러져야 했다.

올해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학부모회 회장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극장에 연락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곳의 극장 체인에 연락했고, 그중 한 곳에서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애니메이션 상영 회차를 배정해 주기로 했다. 대관료는 무료였지만 입장료(일괄 5천원)는 내야 했는데, 그것만도 내 입장에선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다.

상영 당일, 사전 신청한 학생과 학부모가 극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우리끼리만의 관람이니 눈치 볼 일도 가슴 졸일 일도 없었다. 어두운 극장에서의 90분 착석이 힘든 학생은 수시로 나갔다 들어왔고, 이쪽에서 어린아이가 돌고래 소리를 내고 있으면 저쪽에선 조금 더 큰 아이가 “마마마마”라며 반향어를 말했다. 그러면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나름 형님뻘 되는 학생이 “조용히 해”라며 호통을 쳤는데, 그 모든 자유로운 모습에 부모들은 마음 편한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극장에 처음 가봤다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는 혹 타인에게 피해라도 줄까봐 늘 가슴 졸이며 사느라 정작 내 자녀가 일상을 꾸리는 능력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극장에서는 1년에 두 번씩 발달장애인 전용 상영 회차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이날 몇 년 만에 극장에 간 아들은 그새 또 컸다고 90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얌전히 앉아 나름 점잖게(?) 영화를 관람했다. 어릴 때 모습만 기억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앞으로 남은 학령기 동안 ‘영화 관람’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성인이 된 언젠가는 발달장애인 전용 회차를 졸업하고 일반 관객들과 일반 객석에서 관람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발견했다.

아들은 학교에서 종종 선물을 받아온다. 기업, 기관, 종교단체 등에서 특수학교에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기부하는 것 같았다. 장난감과 과자, 생필품 등을 받아오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렇게 기부할 금액으로 선물 대신 영화관을 대관해주고 공연을 섭외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발달장애인이 일상을 잘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발달장애인만이 아닌 모든 비장애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결국 이 사회에서 우리는 함께 공존해 살아나가야만 하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류승연 | ‘서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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