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이해하려면 … 데이터 속 숨겨진 '씩데이터' 찾아라"
고객의 일상에 직접 뛰어들어
마음의 동기 살피는 씩데이터
AI가 다루는 빅데이터와 달라
요플레·블리자드 등 주요 기업
씩데이터 통해 매출 상승 이뤄
"인공지능(AI)이 잘 분석하는 건 패턴이 있는 정량 데이터입니다. 인간 행동 패턴의 이유를 찾으려면 결국 빅데이터보다는 '씩(Thick) 데이터'가 중요합니다."
구글·한국필립모리스·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등 글로벌 기업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경영인 백영재 인류학 박사는 지난 18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씩데이터란 깊고 두꺼운 분석에 의해 얻어진 데이터로, 양적 데이터를 의미하는 빅데이터와 대조된다. 백 박사는 "사람이 관련된 모든 비즈니스는 '씩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박사가 대표적인 사례로 든 건 '요플레'사다. 처음 요플레가 제품 '요거트'를 출시했을 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건강에 좋은 이미지 때문에 자녀들에게 간식으로 사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들의 매출 비중은 높지 않았고 요플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하는 '포커스 그룹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에서 고객들은 "평소 아이에게 건강한 간식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요플레는 이들의 말을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고객의 집에 머무르며 관찰하는 '참여 관찰' 방법을 택했다. 관찰 결과 고객들은 그들이 말한 바와 다르게 자녀들에게 건강한 간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쁜 아침 등교 시간에 아이들은 점잖게 한자리에서 앉아 수저를 들고 요플레를 먹기보다는 장난을 치는 데 더 집중했고, 부모들은 자신들이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당류가 많이 들어간 시리얼을 자녀들에게 건네기 일쑤였다.
백 박사는 "요플레사는 이 관찰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쉽게 들고 등교할 수 있는 '고거트(Go-gurt)'라는 제품을 개발해 매출을 크게 신장시켰다"며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말이나 데이터만 보지 않고 그 속의 '이유'를 찾는 씩데이터가 주효했던 사례"라고 설명했다.
씩데이터 적용의 또 다른 사례는 글로벌 게임사 블리자드의 '하스스톤' 모바일 버전 출시와 얽힌 일화다. 하스스톤은 블리자드의 대표작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구성된 카드게임이다.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에 하스스톤 출시차 방문하면서 게임을 모바일용이 아닌 PC와 아이패드용으로만 출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을 실제로 방문한 결과 두 국가 게임 유저들은 미국과 달리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포착했다. 대중교통에서 주로 휴대폰을 사용해 게임을 한다는 점을 관찰한 이들은 모바일 출시를 검토했고 실제 출시 첫날 iOS에서 다운로드 1위, 안드로이드에서는 다운로드 2위를 차지했다. 백 박사는 "빅데이터로 수집한 생활 패턴이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직접 관찰하고 함께 생활해보는 씩데이터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9월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대표들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
미켈 크렌켈 레드어소시에이츠 파트너는 '빅데이터도 모르는 인간의 숨은 욕망' 세션에서 자사가 컨설팅한 레고의 사례를 제시했다.
크렌켈 파트너는 "'레고'가 위기에 빠졌을 때 레드어소시에이츠 직원들은 레고 수요자인 아이들의 놀이 방식을 직접 탐구한 적이 있다"며 "레고 직원들은 아이들이 쉽게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주어졌을 때 이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면서 더 큰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간단한 구조의 블록으로 간단한 완성품을 만들기보다는 아이들이 대상이더라도 다소 어려운 조립을 하게 하는 제품들에 대한 인기가 좋을 것이라는 점을 씩데이터를 통해 도출한 것이다.
같은 세션에서 영상을 통해 이날 세션에 참석한 로라 크래제키 딜로이트 전략총괄은 "AI 시대가 되면서 자동화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며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이렇게 모인 데이터와 소비자 행동을 연결하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빅데이터와 실제 고객의 수요, 행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씩데이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제언이다.
[박제완 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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