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팩 재활용 어려워" 해외서도 난제...한국 낙농업 원로가 풀었다
발상의 전환..."갈면 목재로 쓸수 있어"
환경부 규정상 멸균팩은 종이로 재활용해야..."활용처 넓히자"
곱게 갈린 새하얀 가루가 밀가루 같기도, 범죄 영화 속 마약 같기도 했다. 사회적 협동조합 '자원과순환'의 이만재 이사장은 "주스와 두유의 포장재인 멸균팩을 잘게 분쇄한 가루"라 했다. 이 이사장은 2002~2004년 서울우유의 전문경영인(CEO)격인 총괄전무를 지낸 인물로 지금은 대원리사이클링 대표를 맡고 있다.
멸균팩은 보존성이 좋아 최근 사용량이 급격히 늘었지만 재활용은 매우 어렵다. 환경부가 올해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의무화했을 정도다. 이 대표는 "종이로 재활용하려니 어렵지"라며 "생각을 바꾸면 친환경 목재로 쓸 수 있는데, 정부의 발상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멸균팩은 스웨덴 기업 테트라팩이 개발한 포장용기다. 두유, 주스 등을 담은 기다란 사각형 용기가 멸균팩이다. 머리 부분이 세모난 우유팩은 내부가 폴리에틸렌(PE) 코팅만 돼 있어 하얗고, 냉장보관을 해야 하지만 멸균팩은 공기를 차단하는 알루미늄 막이 한겹 더 있어 내부가 은박지색이고, 상온에 보관할 수 있다. 그 보존성에 사용량이 꾸준히 늘어, 전체 종이팩 사용량은 2014년부터 최신 통계가 작성된 2022년까지 6만8000여톤으로 일정했는데 멸균팩 사용량은 1만6000여톤에서 3만2000여톤으로 늘었다.
하지만 재활용률은 1.4%다. 일각에선 '멸균팩을 분리배출하지 않아서'라 설명하지만, 재활용 기술 자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게 일선 재활용업계의 목소리다. 한 제지업계 관계자는 "멸균팩 자원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단계"라 설명했다.
우유팩은 물에 넣고 세탁기처럼 원심분리하면 종이가 떨어져 나가 폴리에틸렌만 남는다. 폴리에틸렌은 불에 타기 때문에 연료로 쓰면 된다. 멸균팩은 종이가 떨어지고 알루미늄과 폴리에틸렌이 붙어 폴리알(Poly-Al)이란 물질로 남는다. 폴리알은 알루미늄도, 폴리에틸렌도 아니다. 재활용도, 폐기도 어렵다. 녹는점이 1900도로 높아 보통의 소각로(1200~1300도)로 녹지 않고 땅에 묻어도 500년이 넘어야 썩는다.
멸균팩에서 종이를 분리해내도 폴리알을 처리할 수 없어 온전한 의미의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다. 테트라팩이 또다른 멸균팩 제조사인 SIG콤비블록과 10여년 전 국내의 한 제지사에 멸균팩 재활용 설비를 구축해줬지만, 2017년부터 설비가 정상가동하지 못한 것도 폴리알 처리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폴리알을 분리하는 기술은 유일하게 중국의 모 업체가 가졌는데, 중국의 폐기물 금수 조치로 설비도 가동 중단했다. 해당 제지업체 관계자는 "현재로서 환경부의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분담금이 멸균팩 수거업체에만 지급돼 제지사는 멸균팩을 재활용하는 수익보다 폴리알을 처리하는 비용이 더 크다"고 호소했다.
지난 21일에 만난 이만재 이사장은 2년 전 멸균팩을 분쇄해 합성목재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자원과순환의 조합사인 동하가 실제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가구와 인테리어 자재의 원료가 되는 합판은 톱밥을 접착제와 섞어 고온 압축해 만들었다. 이때 접착제에서 포름알데히드 등이 나와 눈이 빨개지거나 새집증후군이 생기기도 했다. 멸균팩 분말을 쓰면, 폴리에틸렌이 고온에 녹아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공원과 산책로의 데크길로 쓰이는 방부목도 대체할 수 있다. 방부목은 방부 처리를 해도 수명이 5년이다. 폐기해 소각하면 독성 물질이 나온다. 멸균팩 분말로 만든 합판은 수명도 20년이 넘고, 폐기하면 다시 분쇄해 재재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현재로서 폐멸균팩을 수거하는 업체들은 제지회사에 납품해야만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분담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이 이사장은 환경부가 관련 규정을 고쳐 합판 제조사에 멸균팩을 납품해도 수거업체가 분담금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멸균팩을 종이로만 재활용할 수 있게 한 규정 탓에 멸균팩의 재활용률도 낮다"며 "멸균팩을 분리배출하는 것은 기본이고, 해마다 늘어나는 멸균팩을 수용하려면 활용방안도 널리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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