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만든 사람들이 책임져야 [성한용 칼럼]
성한용┃정치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다음날 아침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하겠다”고 했다. “기자들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도 했다.
2년이 훌쩍 지났다. 그는 의회와 소통하지 않았다. 야당과 협치하지 않았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다. 기자들과 간담회를 자주 갖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4·10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권 심판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다음날 아침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는 총선 민심을 겸허히 받들지 않았다. 국정을 쇄신하지 않았다. 경제와 민생은 안정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3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두달은 반성과 혁신의 몸부림을 보여드렸어야 할 골든타임이었다. 우리는 국민의 요구에 묵묵부답,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만을 보여드렸다. 국민께서는 ‘마치 갈라파고스에 사는 사람들 같다, 심판받은 사람들이 맞느냐. 심지어 이긴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말씀까지 하신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의 내용은 전적으로 옳다.
현실 세계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그가 표현한 대로 ‘거의 식물 대통령’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정진석 비서실장이 모여 사는 가상 세계에서는 ‘정상적인 대통령’인 것 같다.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정말 이대로 3년을 버틸 생각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이긴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 정치를 모른다.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정치다. 경험 없는 사람이 잘할 수 없는 것이 정치다.
둘째,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다. 한 보수 신문 사설이 “다른 사람들과 생각과 정서를 공유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썼다.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 같다.
정치를 모르고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면 결국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이다. 찍은 사람들이 책임질 수는 없다. 유권자는 죄가 없다.
그러나 만든 사람들은 책임져야 한다. 정권 탈환에 눈먼 이른바 보수 성향 논객들, 극우 성향 유튜버들, 그리고 국민의힘 책임당원들이 앞장서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다.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는 2020년 12월22일치 신문에 ‘윤석열을 주목한다’는 칼럼을 썼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한 직후였다.
“우리는 여기서 윤석열이라는 사람의 지도자 자질을 본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정치권 주변에서 술수 요령을 배우고 몇 차례 선거를 거쳐 국회에 진출하고 경쟁자들과 이전투구를 벌인 끝에 지도자 반열에 오르곤 했다. 윤석열은 아니다.”
올 3월26일치에는 이렇게 썼다.
“선거 결과 민주당이 제1당이 되면 정국의 주도권은 이재명 대표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윤 정권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이름뿐인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나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 놓고 총선 뒤 4월16일치에 주변 사람들의 말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윤 대통령이 대오각성해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했다. 윤 정권이 아무리 못해도 친북 좌파 세력의 준동보다는 낫다고도 했다.”
그런가? 결국 ‘거의 식물 대통령’으로 3년을 버티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보수는 염치가 너무 없는 것 같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가?
이른바 보수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을 사퇴시키고 대선을 다시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을 압박해서 임기 단축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보수 세력 전체가 윤석열 정권과 함께 몰락하는 수밖에 없다.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잇단 섬광·폭발음…“전쟁 영화에서 본 폭격 장면 같았다”
- “남 얘기 함부로 안 하기”…공장서 숨진 19살 ‘인생계획 메모장’
- 황망한 노동자 죽음들 앞에…남편 확인에 오열, 사촌 못 찾아 낙담
- 리튬 배터리 폭발에 속수무책…화성 공장 화재 22명 사망 대참사
- 합참 “북한 또 오물 풍선 살포”…김여정 예고대로 5차 살포
- 연임 나선 이재명, 2년 더 대여투쟁 선봉…대선길 ‘양날의 칼’
- “대법원장 ‘채 상병 특검’ 추천은 모순”…민주 ‘한동훈 시간끌기 꼼수’ 일축
- “국군 교도소에 있어야”…임성근 엄벌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연대
- [영상] 영정 속 딸은 아비를 바라봤다…고 변희수 하사 대전현충원 안장
- 소설가 정지돈, 교제했던 여성 과거 ‘무단 인용’ 의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