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관계 160년사와 네번째 변동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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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소련)는 1860년 한반도와 국경을 마주하게 된 뒤 한 세기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온 주요 행위자였다.
몰로토프는 사토에게 "중요한 통고를 해야 한다"며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한 뒤, 소련이 내일부터 일본과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선전포고문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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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소련)는 1860년 한반도와 국경을 마주하게 된 뒤 한 세기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온 주요 행위자였다.
이 나라가 한반도의 운명을 뒤흔들게 된 첫번째 계기는 1900년 의화단 사건이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인 동청 철도(현 하얼빈 철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만주를 군사 점령하자 청일전쟁 이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러-일 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안달이 난 일본은 “만주에서 철병하거나 조선에 대한 일본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말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이 갈등이 끝나게 된 것은 1904~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서였다. 일본이 이겼고 조선은 그 ‘식민지’가 되는 치욕을 겪는다.
두번째 충격은 1945년 8월 소련의 참전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던 그해 5월 일본은 중립 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의 중재’를 통해 연합국과 강화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에 대한 회신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토 나오타케 주소련 일본대사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소련 외교장관과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은 8월8일 오후 5시께였다. 몰로토프는 사토에게 “중요한 통고를 해야 한다”며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한 뒤, 소련이 내일부터 일본과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선전포고문을 낭독했다. 이 참전의 결과 소련이 한반도의 ‘38도 이북 지역’을 점령하게 되며 조선은 ‘분단’이란 아픔을 강요당했다.
세번째 움직임은 한-소 수교였다. 이 중대한 사실을 알리려 1990년 9월2일 평양에 도착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김영남 외교부장은 “이때까지 동맹 관계에 의거했던 일부 무기들도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면 북한을 지켜주던 ‘핵우산’이 없어질 테니, 스스로 핵 개발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지금껏 우리의 숨통을 죄고 있는 ‘북핵 문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북-러는 지난 30여년간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2022년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윤석열 대통령의 무모한 ‘가치 외교’ 등으로 양국 관계는 지난 19일 옛 냉전 시기에 버금가는 ‘동맹’으로 복원되고 말았다. 지금껏 한국이 겪어본 적 없는 크나큰 ‘전략적 패배’다. 이 불길한 변화는 앞으로 또 어떤 충격을 몰고 올까. 불안한 마음이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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