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막걸리에 부추전, 그리고 이효리 눈물의 의미('단둘이 여행 갈래?')
[엔터미디어=정덕현] 바다가 보이는 집,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빗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시간이라 감정도 요동쳤던 것일까. 평상에 앉아 엄마가 부쳐주는 해물부추전에 막걸리 한 잔을 먹던 이효리는 거기 들어있는 홍합을 보며 어려서는 그것만 먹으면 아빠한테 혼났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가난했던 시절, 가족 모두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에 대한 의식 때문에 아빠는 특히 엄했던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야 싸울 수 있지만 다 컸는데, 다 늙었는데 아직도 저런다고 하면서..." 어린 날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했던 엄마도 이효리가 '요즘도 그런다'는 말에는 더 이상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만 하자."고 하신다.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마주하고 넘어서려는 딸과 그 시절을 잊고 싶어하는 엄마. 이건 아마도 JTBC 예능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에서 이효리가 엄마와의 이 여행을 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경주에서 엄마는 이효리에게 "좋은 얘기만 하자"고 하신 바 있다. 하지만 그때 이효리는 엄마에게 "좋은 얘기 나쁜 얘기가 어딨어. 지나간 얘기지."라고 말했다. 즉 이효리는 지나갔기 때문에 그 과거의 아픈 이야기를 용감하게 마주하고 싶다. 그걸 할 수 있는 이 여행을 통해 엄마와 자신 사이에 놓였던 어떤 장벽 같은 걸 넘어서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아빠에 대한 이효리의 불편한 감정을 엄마는 피하고 싶다. 가난했던 삶을 버텨내기 위해 엄했던 남편과 그로 인해 힘들어하기도 했던 자식 그 중간에 있었던 엄마가 아닌가. 과거 이야기라도 어느 쪽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엄마에게는 힘들 터였다.
그래서 그런 상처를 그저 딸이 없던 일처럼 잊고 살아가길 바라지만, 그건 이를 정면돌파하고픈 이효리에게는 회피하는 것처럼만 보인다. 그건 가짜인 것만 같고 진짜는 저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상처가 났지만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보다는 그 상처를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그걸 애써 바라보는 것이 엄마 입장에서는 상처가 치유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이지 않는다. 때론 없는 것처럼 놔둬야 된다는 걸 엄마는 살아온 삶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서먹해진 분위기. 엄마와 마주하기가 버거웠는지 이효리는 평상 위에 벌렁 눕는다. 그러면서 "나 비맞는 거 좋아했는데..."라며 엄마의 시선을 피해 평상 바깥으로 발을 내민다. 이효리는 마치 아이 때로 돌아간 듯 빗물에 젖어가는 발을 종종 댄다. 쏟아지는 비에 어디가 빗물이고 어디가 바닷물인지 아련해지는 시간, 이효리의 발이 빗물이 촉촉이 젖어든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듯, 이효리는 나지막이 '가시나무'를 부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 빗물과 바닷물을 넌지시 바라보는 이효리의 눈에서도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한껏 센치해진 이효리는 그런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바지락 해감을 위해 두 시간은 물에 담가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런 딸의 마음을 뒷모습만 봐도 아는 엄마는 이제 들어갈까 하고 묻는다. 조금 더 있겠다는 이효리의 목소리에 울어서 코맹맹이가 된 아이가 담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 장면은 아마도 세상의 부모 자식 관계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저마다의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전후 생존하기 위해 어렵게 살아오셨던 부모님들과 그 밑에서 함께 버텨냈던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 그것이 아닐까. 힘들었던 시절에 가졌던 상처들과 그럼에도 부모님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이해하려 노력하고픈 마음이 있고,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부모이기에 자식이 가진 그 상처를 너무나 잘 알아 여전히 아픈 가시처럼 저 밑으로 꾹꾹 눌러놓고 살아가는 마음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감정들이지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두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그 감정들은 누군가와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는 그 상황을 말과 말의 혹은 감정과 감정의 부딪침이 아니라, 지극히 촉촉한 감성으로 담아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피어나는 감정이라는 걸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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