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열풍의 풍선효과?···소외받는 ‘범용 D램’ 몸값 꿈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PC·모바일처럼 일상적인 제품에 탑재되는 ‘범용 D램’ 몸값이 꿈틀거리고 있다. 고성능·고사양의 HBM 생산에 자리를 내주느라 전통적인 D램 제품은 ‘공급 병목 현상’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HBM 생산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까지 HBM 생산능력을 13만장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지난해 말 4만5000장 수준에서 1년 만에 3배 가까이 늘리는 것이다. SK하이닉스도 생산량을 3배가량 늘릴 방침이다. 메모리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도 시장 점유율을 현재의 9% 수준에서 내년 연말에는 24~26%로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HBM은 D램의 한 종류다. 전원이 켜져 있는 동안 데이터를 저장하는 D램 칩을 여러 장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였다. 미국 엔비디아 등이 만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결합해 천문학적인 분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연산하는 AI 가속기 용도로 쓰인다. HBM은 다이(작은 사각형의 칩 조각) 크기가 기존 D램보다 커서 생산설비가 2.5~3배 더 든다. 반도체 회사의 공정 라인은 한정돼 있으므로, HBM에 할당하는 비중을 늘릴수록 범용 D램 출하량은 줄어드는 구조다.
이에 범용 D램 제품의 공급 부족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전례 없는 메모리 수요-공급 불균형이 나올 수 있다”며 “이는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D램 수요가 공급량을 23%가량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HBM 공급 부족 비율(11%)보다 더 높은 수치다.
범용 D램은 국제 표준에 따라 제작된 D램을 뜻한다. 고객사 요구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되는 HBM과 구분된다. 한 번의 클럭(컴퓨터 프로세서 동작 단위)에 데이터 입·출력이 이뤄지는 더블데이터레이트(DDR)가 표준 규격이다. 현재 DDR4 제품이 주력 모델이고 DDR5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최근 D램 가격은 전 제품군에서 오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지난달 현물가격은 2.1달러로 지난 1월의 1.8달러에서 16.6% 상승했다. 서버용 D램 제품 가격도 9~19% 올랐다. DDR3의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생산 중단 수순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DDR3는 출시된 지 10여년이 지난 구형 모델이지만 아직도 무선인터넷 공유기 등에 널리 탑재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하반기 DDR3 수요가 공급량을 20~30%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HBM에 대한 캐파(생산능력) 할당이 늘어나다 보니 전통적인 D램을 원하는 고객사들 사이에서는 자기들이 갖고 갈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급 우려가 점점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D램 가격 상승은 메모리 제조사들의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에게는 범용 메모리가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범용 D램의 수익성 개선이 하반기 실적 반등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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