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평 방에 업체 수십곳… 불법사채 ‘온실’된 공유오피스[히어로콘텐츠/트랩]②-下
〈2〉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下)
앞선 ‘합법으로 위장한 불법사채 추적기(上)’에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을 문의해봤다. 그 결과,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대부업체’ 62곳 중 정상적으로 영업한 곳은 단 3곳이었다.
대부중개 플랫폼은 현재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 시장의 표준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대출○○’ 등 사이트들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 정식 등록된 대부업체만 광고할 수 있다. 그런데 금감원 조사에서 피해자 4313명 중 3455명(80.1%)이 플랫폼에서 처음 불법사채를 접했다고 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접촉한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이들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취재팀이 직접 찾아가 봤다.
“저희는 영업 안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지난달 2일, 취재팀이 연이율 365%의 고리로 대출을 제안한 한 정식 대부업체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그는 발뺌부터 했다. 취재팀은 앞서 대출 이용자를 가장해 이 업체에 연락하자, 한 달 안에 65만 원을 갚는 조건으로 50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법정 상한의 18배가 넘었다.
녹취록이 있다고 하자 대표는 그제야 “저한테 전화가 오면 번호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겨줬다”고 인정했다. 번호를 넘긴 업체 이름에 대해선 “어쩌다 알게 됐다”며 말을 아꼈다. 취재팀은 불법사채와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이 업체의 주소지로 향했다.
현행법상 대부업은 반드시 사무실이 있어야 영업할 수 있다. 사무실이 없는 업체가 불법을 저지르면 적발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2010년 생긴 조항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3주간 전국을 돌며 확인한 현실은 법과 딴판이었다.
● “점검 나오면 직원인 척 해드려요”
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주소지를 4월 24일~5월 14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서류상 주소만 있는 ‘유령업체’가 17곳이었다. 다른 11곳은 사무실은 있었지만 비어있었고, 일부는 전용면적이 3.3㎡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8곳은 접근이 막혀 있어 사무실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유령업체 17곳은 광주뿐 아니라 경기, 인천 등 전국에 흩어져 있었다. 모두 공유오피스였다. 공간을 빌려준 공유오피스 측에 묻자 해당 대부업체는 전부 ‘비(非)상주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무실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고 주소만 등록해뒀다는 뜻이다.
“구청 현장점검 일정만 미리 알려주시면 돼요. 빈 곳에 명패랑 노트북 비치해서 원래 사무실이 있던 것처럼 꾸며드려요. 당일엔 저희가 대부업체 직원인 척 역할 대행도 해드리니 직접 안 오셔도 됩니다.”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취재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부업은 현장점검에 대비하는 게 최고로 중요한 것 알지 않냐”며 이렇게 말했다. 불법 영업을 위한 생태계가 완성돼있었다.
● 14평 사무실에 대부업체 56개
취재팀이 방문한 11곳은 공유오피스 안에 사무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너무 좁아 정상적인 업무는 불가능해 보였다. 1곳은 아예 ‘임대 문의’가 붙어 있는 빈 사무실이었다.
대구 남구 소재 공유오피스는 우편함부터 수상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보낸 우편물이 56통 쌓여있었다. 그런데 수신자로 표시된 대부업체는 주소만 같고 이름이 전부 달랐다. 건축물대장으로 확인한 이 공유오피스 전용면적은 45㎡(약 14평), 업체 1곳당 0.8㎡(약 0.2평)만 쓸 수 있는 셈이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문이 잠겨 있었고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듯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경기 용인시 소재 다른 정식 대부업체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가 빌린 공간은 전용면적 0.6㎡(약 0.2평)에 불과했다. 책상과 의자만 겨우 들어갔다. 외부로 연결된 창문도 없어 사실상 창고와 다름없었다.
이러고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은 건 비정상적인 공간을 대부업체 사무실로 등록하는 게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업법 시행령과 금융위원회 해석에 따르면, 정식 대부업체의 사무실은 숙박시설이 아닌 건물 내부이면서 다른 공간과 벽으로 구분되고, 출입문만 따로 있으면 된다. 면적이나 상주 여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공중전화 부스만큼 비좁은 공간을 사무실로 등록해도 문제가 없는 셈이다.
● ‘미리 대비하세요’ 엉터리 점검
취재팀은 관할 지자체에 이런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다. 특히 유령업체는 불법이라, 지자체가 강제로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유령업체 17곳의 관할 지자체는 모두 유령업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접 가서 보면 누구나 알 사실을 관리 당국만 모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담당 공무원이 가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식 대부업체에 등록증을 내줄 때 현장실사는 필수가 아니다. 임대차 계약서와 건축물대장 등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
그마저도 사전에 예고하고 나간다. 담당 공무원으로선 허탕 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시에 갔는데 직원이 없으면 강제로 안에 들어갈 권한이 없고, 나중에 다시 방문해야 하므로 일이 많아진다. 아예 관련 지침에 “가급적 불시에 하되 부재중일 가능성이 크니 사전 예고로 효율성을 도모한다”라며 권장하고 있다. 수도권 한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은 “혼자 100곳 넘는 대부업체를 담당하면서 다른 업무도 병행한다. 일일이 가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 책임 떠넘기는 금감원-지자체-경찰
물론 플랫폼에 광고 중인 모든 대부업체가 불법 조직과 연계된 건 아니다. 취재팀의 대출 문의에 법정 기준에 맞는 이자를 제시하면서 등록번호도 알려준 업체가 3곳 있었다. 이 중 한 곳의 상담원은 “50만 원은 1주일 뒤에 80만 원으로 갚으라는 업체들 있죠. 지인 연락처도 달라고 하고요. 그거 무조건 불법이에요. 절대 쓰지 마세요. 진짜 위험해요”라며 걱정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다수가 지자체에 등록된 업체라서 관리·감독도 기본적으로 지자체 책임”이라고 말했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된 업체 36곳의 관할 지자체 담당자들은 “불법은 경찰 수사로 밝혀낼 일”이라고 했다. 반면 경찰은 불법사채 조직이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범행한 후에 추적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대부업 등록증 도용을 막기 위해 대부업체가 광고하기 전에 본인인증을 하는 절차를 거치고 피해자의 민원이 접수된 업체는 광고를 올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플랫폼이 정식 대부업체들과 불법 사채조직의 연결고리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플랫폼 업계에서도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한 불법사채 조직을 걸러내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대부 이용자를 가장해 접촉한 불법사채 조직원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0억 원대 불법 대출을 굴렸던 전국구 조직 ‘강 실장’ 또한 마찬가지다. 2년간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몬 강 실장 조직의 민낯은 25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3회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1)
‘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2)
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Kw-RO8lUHo)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
▽영상: 송유라CD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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