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원 죽음에 대한 변명의 아우성…중대재해처벌법이 증명한 것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에 제정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기 전 그 역할은 산업안전보건법이 했다. 이미 규제법이 존재함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새로 입법된 것은 사고가 발생한 현장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권을 쥔 경영책임자에게도 사업 전체 종사자와 관계자의 안전 확보를 위한 의무를 부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게 됨으로써 좀더 포괄적인 범위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한 시도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 지난 2년간, 제정 당시 중대재해처벌법에 기대했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4일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해당 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된 17명 중 15명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실형은 고작 2건이 선고됐는데, 각각 징역 1년형과 2년형에 그쳤다. 벌금형 역시 경영책임자 개인에게 부과된 것은 단 한건도 없었다.
그렇다고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가 매우 미약한, 현실과 괴리된 처벌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만 2년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는 27.8% 감소했다. 노동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전체 사망자가 줄고 있는 만큼 이 법의 존재가 노동자의 죽음을 막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여러 노력 끝에 올해 1월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확대 시행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년간 확인된 사실들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이후 산업재해 사망자는 감소 중이다. 둘째,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아 실효적 처벌을 받은 이는 2명에 그쳤다. 즉,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규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이 법은 노동자의 사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흥미롭다. “사고 예방 효과는 적고 경영자를 과도하게 처벌하는 법”이라는 재계의 비판과 이 법이 정확하게 반대로 작동하고 있어서다. 법의 효과는 (처벌조항의 경중과는 상관없이) 실제로는 크게 처벌받은 이가 없음에도 발생했다. 중요한 건 이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를 실제 엄벌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지난 2년간 안전한 노동환경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서운’ 법이 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일 발표한 중소기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입법 이후 사업주의 안전의식이 높아졌다는 응답은 전체의 94.3%, 노동자의 안전의식이 높아졌다는 답변은 83.7%에 이른다.
지난해 여름 해병대에서 발생한 ‘채 상병 사망사고’를 두고 병사도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만일 포함되어 있었다면 채 상병과 같이 ‘사업주’(지휘관)의 무리한 요구를 따르는 과정에서 ‘노동자’(병사)가 사고를 당한 경우, 관련해 처벌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증명한 것을 떠올려보자. 사업주를 무자비하게 엄벌했기 때문에 이 법이 작동했던 것이 아니었다. 노동환경의 안전을 위해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 이 법이 가진 힘이었다.
지난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가 열렸다. 죽은 해병대원의 ‘사업주’는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그의 부처 장관도 선서를 거부했다. 불리한 증언은 거부한 채 어떡하면 자기변명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저마다 손을 들고 아우성이었다. 그럼 책임을 지는 의미로 사표를 쓸 수 있냐니까 그건 또 싫단다. 박정훈 대령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책임을 통감하는 이가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병사를 포함하지 않을 뿐, 군인과 군무원, 공무직 근로자는 적용 대상이다. 그러니 이 군대가 법의 존재를 몰라서 해병이 죽은 게 아니다. 병사는 해당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처벌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단지 안전이, 사고가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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