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 조폭같은 행동"…참다 참다 폭발한 환자 1000여명 '거리로'
4개월이 넘은 의정 갈등에 그동안 숨죽이며 고통을 감내하던 환자들이 "이제는 못 참는다"며 거리로 나선다. 1000여명의 환자와 이들의 보호자가 다음 달 서울 한복판에서 집단휴진 철회를 위한 총궐기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의사들이 꺼리는 진료 지원(PA) 간호사 법제화, 외국 의사 진료 허용 등도 요구하며 환자 안전책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의정 갈등의 실제 '피해자'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이들의 분노가 이제는 행동으로 표출되는 모습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는 24일 입장문을 내고 "싫든 좋든 2025년 의대 정원은 이미 확정되었으므로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중단 하라"며 "2026년 의대 정원 규모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의사 수 연구를 위한 전문가 중심의 '수급 추계 전문위원회'(가칭)를 구성하는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다. 환단연은 동시에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 주장을, 정부는 2000명 증원 고수 방침을 각각 내려놓아야 한다"며 극한 대립 중인 의사·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환단연은 다음 달 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촉구 환자 총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주최 측의 예상 참여 인원은 1000명이다. 환단연은 " 환자의 생명은 환자와 환자 가족이 지키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며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도구로 정부를 압박하는 의료계의 투쟁방식에 환자단체들은 더는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 천명했다. 병을 앓는 환자와 이들을 돌보는 가족 등이 이 정도로 대규모 집회를 여는 건 2014년, 2020년 의사 파업할 때도 없던 일이다.
애초 환자단체들은 "의사·정부 양측의 입장을 십분 공감한다"(5월 환단연),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희망의 끈을 붙잡으며 버텨 왔다"(4월 한국중증질환연합회) 와 같이 의사·정부에 제대로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환자들은 약자다. 불이익을 당할까 봐 의사의 눈치를 보고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을 포함해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병원과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집단 휴진' 선언이 이어지며 환자들도 제대로 '뿔'이 났다. 지난 12일 '무기한 집단 휴진'을 앞두고 서울대병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 회장은 "희귀 중증질환 환자들은 100일 넘게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다"며 "의사 집단들의 조직폭력배와 같은 행동을 보고, 죽을 때 죽더라도 의사 집단에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린 의사 집단을 더 이상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엄중한 법의 잣대로 심판해달라"고 날을 세웠다.
의료공백의 피해를 온몸으로 체감한 만큼, 환자단체들은 사태 재발을 막는 데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의사들과의 충돌도 더는 피하지 않는 모습이다. 안기종 환단연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간담회에서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의료는 정상 작동될 수 있도록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진료 지원인력(PA간호사)도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모두 의사들이 '의료 노예' 등의 격한 표현을 써가며 반대하는 사안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의료공백 해소와 재발 방지를 위해 △사직 교수 사표 수리와 새로운 교수 임용 △외국 의사 도입의 적극 검토 △환자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 등 7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당시 "휴진 등으로 환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고소·고발도 검토할 의향이 있다"며 의사를 향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성주 회장은 "환자들은 의료공백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의사·정부는 서로 선언과 발표만 하고 언론과 정치권은 피해사례만 찾는다"며 "이제는 이 사태를 끝내는 데 모두가 온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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