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필리핀은 전쟁 선동하지 않아” 수위조절 나섰나
남중국해(서필리핀해)에서 중국과 필리핀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필리핀이 수위 조절에 나섰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이날 남중국해를 관장하는 서부사령부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필리핀은 전쟁을 선동하지 않는다”며 “필리핀은 국가를 방어할 때 이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필리핀인의 본성에 충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물리적으로 충돌한 사건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7일 중국 해경선은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인근에서 인원 교대와 보급에 나선 필리핀 해군 선박을 공격했다. 필리핀군에 따르면 당시 중국 해경은 구명보트 2척에 탄 비무장 상태 필리핀군 병사들에게 마체테·도끼·봉·망치 등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군 병사 1명의 엄지손가락이 절단되고 M4 소총 8정 등 필리핀 측의 장비가 압수·파괴되기도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중국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도발 속에서” 자제력을 발휘한 자국 군인들을 칭찬했다. 이어 “우리는 직무를 수행하며 무력이나 협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침착하고 평화로운 성격을 묵인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며칠 앞서, 루카스 버사민 필리핀 행정장관은 지난 17일의 충돌이 “오해이거나 사고였을 것이다. 아직 이것을 무장공격으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필리핀군의 재보급 일정을 중국이 사전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충돌이 촉발됐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을 발동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남중국해가 미국과 중국 사이 잠재적인 화약고가 된 상황에서 필리핀이 남중국해 관련 발언의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 협정에 따르면 한쪽이 ‘무장 공격’을 당할 경우 서로의 자기방어를 도와야 한다. 논리적으로는 중국과 필리핀의 무력 충돌이 미국까지 개입하는 상황으로 번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항공기나 선박이 공격당할 경우 철통같은 방어에 나서겠다고 재확인한 바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엔리케 마날로 필리핀 외교장관과 지난 19일 통화하면서 중국의 이번 행동을 “필리핀의 합법적 해상 작전을 두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확고한 약속을 강조했다.
중국은 지난 17일에 취한 조치가 합법적이고 필요한 조치였다며 비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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