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한국 인프라' 이상 없다
영화 '마진 콜'(2013)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소재로 한 수작이다. 제러미 아이언스와 케빈 스페이시를 포함해 앙상블 캐스트인 이 영화 후반부에 스탠리 투치가 폴 베터니에게 하는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자신이 투자은행에 들어오기 전에는 교량을 건설하는 엔지니어였다고 말한다.
투치가 오하이오에 지은 아치교 하나는 하루에 1만2100명이 이용한다. 그 다리는 35마일 거리를 돌아다니던 운전자들에게 총 84만7000마일을 절약해준다. 한 해에 3억492만마일이다. 다리를 놓은 것이 22년 전이니까 67억824만마일이고 시속 50마일로 그 다리를 넘어간 모든 사람에게 차 안에서 그냥 보냈을 뻔한 총 1531년이라는 시간을 절약해주었다.
투치가 그 많은 숫자를 정확히 암기해서 대사를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다리라는 인프라가 수많은 사람의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개개인에게는 시간의 절약이고 그 개개인이 일하는 회사에는 업무 효율과 생산성 제고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다리가 절약해 주는 총시간을 누가 계산해 본다면 아마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올 것이다.
경남 창원에 있는 1.7km 길이 마창대교는 국내외에 있는 그런 수많은 다리 중 하나다. 가포동과 귀산동을 잇는다. 2008년 7월 1일에 개통되었다. 마산가포신항터미널에 접안하는 대형 자동차운반선을 포함해 배들이 편리하게 왕래하도록 수면에서 상판까지 68m 높이로 건설되었다. 세계기록이다. 주탑 높이도 164m다. 마창대교 덕분에 고성·통영·거제 방면과 진해·창원 사이의 상습정체 구간인 마산 시내를 지나지 않아도 된다. 남부외곽도로 완공으로 남부경남권과 부산도 연결해준다. 맥쿼리인프라가 건설했고 운영한다.
다리와 같은 기능을 하는 인프라가 있다. 터널이다. 물이 아닌 산을 피해 가지 않도록 해준다. 물을 피해 가지 않도록 해주는 해저터널도 있다. 터널은 다리처럼 우리 눈에 전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틱하지 않다. 아무도 터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거나 터널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 하지 않고, 견우와 직녀도 다리 위에서 만나지 터널 안에서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터널의 역사, 기능과 역할은 다리 못지않다. 밝은 끝을 향해 어려움을 이기자는 희망의 격려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주로 산악지역에 있는 터널들이 유명하지만 기능적으로는 대도시 도심 터널들이 더 중요하다. 예컨대 부산은 도시가 몇 개의 산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터널이 많다. 항만의 물류가 도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중앙고속도로나 김해공항을 포함한 외부와 효율적으로 연결될 필요도 크다. 백양터널과 수정산터널이 부산의 대표적인 터널 인프라다.
마창대교와 부산의 두 터널은 맥쿼리인프라의 계열사들이 각각 운영한다. 문자 그대로 완벽하게 기능과 안전이 관리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의 배려에도 빈틈이 없다. 하나, 두 개의 자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소규모의 오퍼레이션이다. 그러나 업무의 진지성과 치밀함은 여느 대기업 수준과 다르지 않다. 사회 전체의 시각에서 볼 때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소형 프로젝트지만 관리자들이 전문가들과 함께 빈틈없고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다. 끊임없이 개선해야 할 점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우리가 하루하루 다리를 건너고 터널을 통과하면서 별 불안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전문가 정신 덕분이다.
금융위기로 갑자기 해고당한 투치는 옛날에 하던 인프라 일이 금융보다 더 의미 있었다는 뜻으로 자신이 옛날에 지었던 다리 이야기를 한 것이다. 맷 데이먼이 내레이션을 하는 '인사이드 잡'(2010)에서도 한 경제전문가가 "진짜 엔지니어들은 다리를 짓지만 금융엔지니어들은 신기루를 짓는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금융, 실물경제 어느 쪽도 덜 중요하지 않다. 마창대교, 백양터널, 수정산터널은 금융회사가 만들고 관리하는 인프라가 실물경제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최적의 모델을 보여준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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