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음료’ 피해자 누구나 될 수 있다…강남구, 예방 교육 현장 가보니
허리를 90도로 꺾은 자세로 길거리에 멈춰 있는 한 남성의 모습. 양팔은 앞뒤로 향해 마치 걷는 듯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을 좀비처럼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요?” “펜타닐!”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로봇고에서 ‘약 바로 알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강의를 듣던 50여명의 고등학생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이 약물 오·남용과 마약의 위험성을 배우는 자리다. 수업은 약의 효과·부작용, 올바르게 먹는 법 등 의약품 관련 내용으로 시작됐다.
이어 마약 관련 내용이 나머지 시간을 채웠다. 게임에서 이겼을 때보다 몇 배 이상의 쾌락을 주는 마약이 도파민 수치를 치솟한 후 내성과 중독을 거치면 ‘뇌가 녹는 수준’의 손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소개됐다.
윤지연 약사는 “도파민이 기준치를 넘어 상상을 초월한 수준으로 올라가면 뇌 구조가 변한다”며 “녹아버린 퓨즈처럼 한 번 손상된 뇌는 복구할 수 없어 회복되지 않는다. 호기심에 한 번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마약 관련 법에서는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맛있다는 의미로 ‘마약김밥’이라는 말도 있지만 마약은 이렇게 ‘밈’을 만들어 농담처럼 다루면 안 됩니다. 기호품이나 오락으로 볼 수 없는 사회악인 거예요.”
최근 마약 범죄 가담 나이가 중학생 수준까지 낮아지면서 학교에서도 관련 교육이 필수가 됐다. 국내외 마약 중독 사태 등 미디어 노출이 잦아진 데다 소셜미디어(SNS)·중고거래 플랫폼 등을 통해 일상적인 접근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수업에 참여한 최서은양은 “궁금해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미리 교육으로 마약의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휘성군은 “대치동 학원가의 ‘마약 음료’ 사건 이후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사실 마약 경로는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어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강남지역 81개 초·중·고교 가운데 올해 49곳이 이 같은 마약 예방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의약품 설명에 집중하나 5~6학년은 중학교 수준으로 마약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과거 마약 예방 교육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불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마약 음료’ 사건 이후 패러다임 전환됐다고 한다.
안혜진 강남구보건소 약무팀장은 “어릴 때부터 위험성을 인지하고 터부시하는 교육으로 예방하는 것이 마약과 중독을 막는 최선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며 “마약 성분이 포함된 식욕억제제는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도 쉽게 검색되고 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학생들도 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강남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적 특성도 있다. 학업 스트레스가 큰 만큼 쾌락이 보상회로로 작용하면 중독될 위험이 커 사전 예방이 절대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윤 약사는 “마약이 확산 중인 현실에서는 아이들이 정확히 알고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며 “다이어트약뿐 아니라 카페인 등 ‘중독’ 관련 청소년 문제도 늘어 현상과 사실을 알려주는 수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졌다”고 전했다.
강남구는 지난달 자치구 단위로는 처음으로 보건소·관세청·교육청·경찰 의료기관·제약기업·종교기관 등 16개 지역 기관이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 예방 공동대책협의회’를 꾸렸다. 술·담배·고카페인 음료·다이어트약을 ‘청소년 4대 유해 약물’로 지정하고 이를 근절을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협의회는 향후 청소년 교육 내용을 논의해 예방 작업을 강화하고 마약을 접한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기관도 중점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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