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와 로스쿨이 지배하는 나라, 풀리지 않는 의정갈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되는 직업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 집단은 어디일까?
개혁이 가장 요구되지만 가장 어려운 분야는 어느 곳일까?
질문은 다르지만, 답은 제각각일수 없을 것이다. 의사와 판·검·변호사를 빼놓고 우리 사회를 말할 수 있을까. 의대(의과대학)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제외하고 우리 나라 교육을 말할 수 있을까. 의료계와 사법·정치계를 놔두고 대한민국의 개혁을 논할 수 있을까.
의대증원을 놓고 벌어진 의사들과 정부의 갈등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극한 대결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이뤄진 지난 2월 19일 이후 넉달이 넘었다. 그동안 환자들의 피해와 국민의 우려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의정갈등의 피해자도 의료개혁의 수혜자도 결국은 국민이지만, 표면적인 갈등과 대립의 주체는 의사와 정부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길래 초유의 의료공백 사태에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최상위소득 직업 ‘의사’ vs 정치권력의 중심 ‘법조엘리트’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연구보고서 ‘2021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2021년 한국직업정보 재직자 조사 기준 ‘평균소득이 높은 직업 50개’에서 각종 진료과목의 의사(한의사·치과의 제외)가 상위 10개 중 8개를 차지했다. 기업고위임원이 1위(연봉 1억9043만원), 한의사가 3위(1억2327만원)를 차지했을 뿐 성형외과의가 2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4위부터 10위까지 차례로 정신과·내과·안과·외과·소아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의였다. 상위 20개로 범위를 넓혀도 70%인 14개 직업이 의사였다. 평균 소득은 성형외과의가 1억3863만원이었고, 상위 20개 중 18위로 의사로는 순위가 가장 낮은 일반의가 9877만원이었다.
의사가 왜 인기 직종이 됐는지, 의대진학이 왜 성적 우수 학생들의 지상 목표가 됐는지를 입증해주는 통계자료다. 이 조사에서 판사(8811만원)는 21위, 검사는 24위(8567만원), 변호사는 27위(8063만원)를 차지하며 법조인들은 의사에 밀려 20위권 밖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법조인들엔 막강한 사법·정치 권력이 있다. 사법권력의 주체일 뿐 아니라 행정·입법권력의 핵심에도 법조인들이 포진해 있다.
먼저 검사·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은 내각에서 법조인 출신 인사들을 많이 등용했다. 지난해 3월 기준, 윤 정부 1기 내각의 장·차관·차관급 인사 109명 중 사법시험 출신은 16명이었고, 이중 검사 출신은 12명이었다. 1년여가 지난 5월 10일 기준으로 장관급 2명, 차관급 7명, 대통령실 비서관 3명이 검사 출신이다.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공공기관 공시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5월 10일 기준 윤 정부에서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된 검사 출신은 2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현 정부까지 재직한 검사 출신 11명을 포함하면 이번 정부에서 30개 공공기관에 재직한 검사 출신은 32명이다. 이중 임기 만료 등으로 퇴직한 7명을 제외하면 25명이 공공기관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한 제22대 국회도 법조인이 중심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61명이 사법연수원을 거쳤다.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민주당이 37명이고, 국민의힘 20명, 조국혁신당 3명, 개혁신당 1명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변호사 출신이 32명이고 검사 출신 19명, 판사 출신은 9명이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수장인 행정부, 변호사 출신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장악한 입법부. 대한민국의 파워 엘리트를 이루는 핵심 직업군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의사의 ‘기득권 사수하기’ vs 정부의 ‘사법만능주의’
서울대 의대교수들이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고, 18일엔 개원의 중심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도 전면 휴진을 강행했다. 같은날 서울대병원 뿐 아니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상급종합병원 ‘빅5’에 소속된 일부 교수들도 휴진에 개별 참여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 관련 행정명령과 처분 취소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책무가 있는 만큼 환자를 저버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사업자 단체인 의협이 개별 사업자인 개원의를 담합에 동원함으로써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협을 신고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임현택 의협 회장 등 집행부 17명에게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도 내렸다. 정부는 대학병원장들에게는 교수 집단 휴직으로 병원에 손실이 발생하면 구상권 청구를 검토하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의료계 집단 휴진에 대해 진료명령 및 업무개시 명령을 발령하는 한편, 이를 어길 경우 고발, 면허 자격 정지, 의협 해체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했다. 무조건 ‘제뜻대로’ 하겠다는 의사 단체들과 무조건 ‘법대로’ 하겠다는 정부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 의정갈등의 시작부터 계속돼 왔다.
의료 개혁을 위한 의대 증원과 의사 인력 확대는 큰 방향에서 이미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 13~15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 응답자 76%가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16%만 “부정적”이라고 했다. 의대증원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돼 진보·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는 과제이기도 했다.
의협을 비롯한 의사 단체의 의대 증원 반대가 근본적으로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기득권 지키기’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의사 단체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으로 의대교수·의협의 집단 휴진까지 ‘집단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고 정부 방침을 철회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설득과 중재, 조정보다는 행정 명령과 사법 처리 방침을 앞세워 대응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1월 의대증원시 단체 행동에 관한 회원 설문조사(찬성 86%)를 발표하자마자 보건복지부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 용인불가” “불법 행위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을 천명했다. 2월 6일 정부가 의대증원 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달 19일 전공의의 집단 사직서 제출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과 함께 의사 면허 정지·박탈, 주동자 고발·구속 방침으로 대응했다. 당시 복지부 브리핑에선 “법정 최고형” “굉장히 기계적인 법 집행” 등 극단적인 발언도 나왔다.
반면 정부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의견 수렴과 논의,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설득에선 사실상 무능했다. ‘의대증원 2000명 산출 근거’와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록’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간 논란이 단적인 예다. 공론의 장에서의 충분한 숙의 과정이 없으니 결국은 정책 강행-강제 명령-법적 처벌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와 정부의 행정·사법 만능주의가 의료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의정간의 퇴로 없는 ‘치킨 게임’으로 몰고 갔다고 할 것이다. 환자와 국민들을 무려 4개월 이상이나 의료 공백 속에 방치해두고 계속된 의정갈등이 혹시 “한국 사회에서 누가 가장 ‘센 놈’인지”를 가리기 위한 의료·법조 엘리트들의 싸움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유다. 안 그렇다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와, 갈등 해결보다 ‘법 논리’를 앞세우는 정부의 대처가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계속될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대로라면 누가 이기든 최후의 패자는 국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은 “중재하라”…정치는 ‘사법’ 아닌 ‘갈등 해결’
‘공부 좀 한다면 이과는 의대, 문과는 법대’가 학벌지상주의 한국에서 오래된 불문율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입시·교육제도가 개편돼도 추세는 오히려 더 강화됐다. 의사와 판·검·변호사가 각각 가장 높은 소득과 가장 많은 권력을 보장받는 우리나라의 최고 엘리트이자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의정갈등의 이면이다.
국민들은 의사에겐 물러나라고, 정부엔 설득하고 중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의정갈등 초기인 지난 2월(13~15일 조사) 여론은 찬성 76%대 반대 16%로 ‘의대증원 2000명’ 정부안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한달만인 지난 3월(12~14일) 조사에선 여론이 “정부안대로 추진”(47%) “규모·시기 중재안 마련”(41%) “증원 철회”(6%)로 나타났다. 의정갈등에 대한 정부 대응에는 “잘하고 있다”(38%) “잘못하고 있다”(49%)로 평가했다. 4월(16~18일) 조사에선 “정부안대로 추진”(41%) “규모·시기 중재안 마련”(47%) “증원 철회”(7%)였다. 한달만에 ‘정부안’과 ‘중재안’에 대한 지지 순위가 바뀌었다.
지난 5월 30일 교육부가 내년 의대 신입생 선발 증원 규모를 최종 1497명으로 확정 발표하자 6월(11~13일) 여론조사에선 “잘된 일”이라는 응답이 66%, “잘못된 일”이라는 평가가 25%였다. 의정갈등에 대해선 “의사들 책임이 더 크다”(48%)라는 응답이 “정부 책임이 더 크다”(38%)를 앞질렀다(이상 여론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요컨대, 국민들은 의료개혁의 핵심인 의대증원의 방향에 대해 지지를 하지만, 정부가 규모·시기를 조정해 의사들을 설득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의정갈등의 책임은 의사들이 크지만, 정부도 못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 ‘사법’이 아닌 ‘정치’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3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기관신뢰도는 의료계(72.1%)〉중앙정부부처(53.8%)〉법원(48.7%)〉검찰(44.5%)〉국회(24.7%)였다. 수치는 한국행정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023년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8000여명의 19세 이상 전국 남녀를 면접조사한 결과, 각 기관에 대해 ‘맡은 일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지’에 대해 ‘약간 믿는다’ 또는 ‘매우 믿는다’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을 산술평균한 값이다.
당시의 조사 시점으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의정갈등에서 “의사책임이 더 크다”고 할 정도로 의료계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떨어졌고, 정부를 이끄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당시보다 하락했다. 국회는 민주당의 단독 운영과 여당의 의사 일정 보이콧으로 반쪽이 됐다. 법원 판결과 검찰 수사는 대형 사건마다 법리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 일쑤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사법 리스크’와 국회의 의사 일정 파행으로 여의도마저 서초동에 의존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사법·정치 개혁을 포함해 한국 최상위 엘리트층이 중심이 된 분야의 개혁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번 의정갈등은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으로부터 ‘개혁’을, 사법으로부터 ‘정치’를 구해내지 않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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