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막든 말든 국내 증시는 '펀더멘털' 좇았다 [이슈 後]
공매도 금지 8개월 성적표
정부 공매도 금지 기간 연장
2025년 3월 30일까지 금지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 준비
연장 둘러싼 시장 평가 엇갈려
공매도 금지 환영한 투자자들
공매도 사라지면 주가 오를까
# 정부가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했다. 시장의 평가엔 차이가 있지만 투자자들은 공매도 금지 연장을 반기고 있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가지수가 오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공매도 금지 효과는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을까. 더스쿠프가 정부가 정책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던 2008년 10월 1일~2009년 5월 31일(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8월 10일~11월 9일(유럽 재정위기), 2020년 3월 13일~2021년 4월 30일(코로나19 팬데믹) 등 세차례 기간의 증시 추이를 살펴본 결과, '일관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 지난해 11월 6일부터 이어진 4차 공매도 금지기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인지 공매도 효과를 둘러싼 시장과 개미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더스쿠프가 공매도 금지가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을 자세하게 분석했다. 공매도 금지 8개월의 기록이다.
정부가 공매도 금지기간을 9개월 더 연장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로 정했던 공매도 전면 금지기간을 내년 3월 30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공매도 금지기간을 연장한 이유는 공매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공매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매도를 재개할 경우 대규모 불법 공매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하기로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공매도 금지기간은 8개월(2023년 11월 6일~2024년 6월 30일)에서 17개월(2023년 11월 6일~2025년 3월 30일)로 길어졌다.
그럼 또다시 연장된 '공매도 금지정책'은 어떤 효과를 내고 있을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한편에선 공매도 금지정책이 2008년부터 15년간 추진해 온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편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증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선 공매도 금지 연장은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한다. 자! 지금부터 이 이야기를 좀 더 깊숙하게 다뤄보자.
■ 공매도 금지 성적표 = 시장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공매도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금지기간이 늘어난 것을 반기고 있다. 공매도 금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사라진 만큼 국내 증시의 회복세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공매도 금지 연장 효과가 개미들의 기대처럼 주가지수를 끌어올릴 수 있느냐다. 공매도 금지기간에 투자자들이 기대한 만큼 증시가 활성화했는지 의문이라서다. 우선 공매도 금지 이후 국내 주가지수의 흐름부터 살펴보자. 코스피지수는 정부가 공매도 금지에 나서기 직전인 2023년 11월 3일 2368.34포인트에서 지난 18일 2763.92포인트로 16.7%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도 9.8%(782.03포인트→858.95포인트) 올랐다.
주가지수의 움직임만 놓고 보면 공매도 금지가 증시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 듯하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이 기간 주가지수가 상승한 곳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의 나스닥종합지수는 같은 기간 1만3478.28포인트에서 1만7862.23포인트로 32.5% 상승했고, 일본의 닛케이225지수도 21.1%(3만1949.89포인트→3만8707.21포인트)로 올랐다. 영국(2.8%), 프랑스(7.6%), 독일(11.6%), 대만(37.8%) 등 다른 국가의 증시도 상승세를 기록했다.
주식시장을 둘러싼 경제적·정치적 상황도 지금과는 180도 달랐다. 공매도 금지 당시엔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이 12개월(2022년 9월~2023년 9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해 10월 초 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최고조에 달했다.
일례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직후인 지난해 10월 27일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가 21.0%를 웃돌았고, 금융시장은 극심한 불확실성에 떨었다. 지난 18일 기준 VIX는 12.30%를 기록했다.
그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수출은 올해 5월 기준 8개월(2023년 10월~2024년 5월) 연속 플러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목의 수출이 늘면서 무역수지 흑자 행진도 12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주가지수가 상승한 것이 공매도 금지의 효과만은 아니란 얘기다.
■ 달라진 시장의 반응 = 그래서인지 공매도 금지기간이 길어지면서 시장의 반응도 달라졌다. 일반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증시를 떠나고, 개인투자자의 매수세는 강해진다는 공식이 있다. 하지만 이번 공매도 금지 기간에는 이런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매도를 금지한 지난해 11월 6일부터 지난 18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29조8836억원의 순매수세를 기록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는 19조588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내다 팔았다.
국내 증시를 떠난 개인투자자들이 향한 곳은 미국 증시였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855억4600만 달러(약 118조18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650억1700만 달러(약 89조8200억원) 대비 205억2900만 달러(약 28조3600억원) 늘어난 수치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건 공매도보다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냐 아니냐의 차이였다는 얘기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펀더멘털"이라며 "해외 증시가 매력적이라고 여긴 개인투자자는 미국 증시에, 국내 경제 회복 기대감을 노린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증시에 베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금지의 영향을 받는 투자자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주식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제도의 변화가 아니다"고 말했다.
■ 공매도 금지와 주가지수의 관계 = 사실 공매도 금지 효과와 주가지수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것은 과거 데이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선 앞서 세차례 공매도를 금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2008년 10월 1일~2009년 5월 31일), 유럽 재정위기가 터졌던 2011년(2011년 8월 10일~11월 9일), 글로벌 증시가 팬데믹에 휘청였던 2020년(2020년 3월 13일~2021년 4월 30일) 등이었다.
그렇다면 공매도 금지 이후 주가지수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공매도 금지 1개월 후, 3개월 후, 공매도 금지 종료일을 기준점으로 주가지수 등락률을 살펴봤다. 2008년 공매도 금지 1개월 후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21.5%, 26.1% 하락했다.
3개월 후엔 코스피는 19.6% 하락했고, 코스닥지수는 22.9% 떨어졌다. 공매도 금지 이후에도 증시는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다. 공매도 금지가 끝난 2009년 5월 31일을 기준으로 하면 코스피지수는 3.0% 하락했지만 코스닥지수는 19.9% 상승세를 기록했다.
2011년 공매도 금지 기간엔 어땠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주가지수가 상승세를 띠었다. 공매도 1개월 후 코스피지수는 0.3%, 코스닥지수는 3.8% 올랐다. 3개월 뒤 주가지수 상승률은 더 올라갔다. 공매도 금지 시작일 대비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5.6%, 12.3% 상승했다. 2020년 팬데믹 때에도 공매도 금지 기간 주가지수가 올라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공매도 금지가 주가지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순 없다고 분석했다. 공매도 금지 시기에 발생한 글로벌 이슈와 세계 각국의 대응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세계를 침체의 늪에 빠뜨릴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2008년 3.0%였던 글로벌 경제성장률은 2009년 –0.1%로 떨어졌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은 2008년에 비해 크지 않았다.
2020년엔 초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증가와 폭락 이후 폭등을 경험했던 투자자의 매수세가 주가지수를 떠받친 측면이 있다. 공매도 금지와 주가지수의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증명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공매도 금지 기간에 주가가 반등한 경우가 있었다"면서도 "이를 공매도 금지의 영향으로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는 주요국이 금리인하와 함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던 시기"라며 "공매도 금지 조치는 외국인 자금이탈 등 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매도 금지가 증시에 활력을 줬는지도 의문이다. 공매도를 금지한 2023년 11월~2024년 6월 19일 국내 증시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20조4184억원으로 공매도를 부분 재개했던 2021년 5월~2023년 10월(19조7000억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공매도 금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면 9개월 더 연장한 공매도 금지는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직까진 확신할 수 없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있다. "공매도가 있든 없든 펀더멘털이 좋으면 주가는 오르고,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 공매도를 금지하든 말든 이게 투자공식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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