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오 이긴 비결? 유승민 IOC 위원 “달걀로 바위를 열심히 치면…”[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2024. 6. 24.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IOC 선수위원에 출마한 유승민 위원(왼쪽)이 육상 황제 우사인 볼트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유 위원은 내달 파리 올림픽을 끝으로 8년 임기를 마친다. 유승민 제공
올림픽 탁구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은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그중 남녀를 통틀어 단식 경기에서 중국 선수를 이기고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는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42) 한 명밖에 없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은 당시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평가받던 왕하오를 상대했다. 이전까지 유승민은 성인 무대에서 왕하오와 여섯 번 겨뤄 여섯 번 모두 패했다. 하지만 바로 그 경기에서 세계 탁구 역사상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유승민이 세트 스코어 4-2로 왕하오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유승민은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부담감이 적었다. 반대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왕하오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선수대기실에서 왕하오를 봤는데 앉아서 다리를 떨고 있더라”며 “당시 내 몸 상태는 100%를 넘어 150%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이 잘 어우러져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유승민은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결승에서 왕하오(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동아일보 DB
‘올림픽 금메달을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다. 유승민의 금메달이 딱 그랬다. 유승민은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다른 국제대회에서 왕하오와의 만날 때마다 연전연패를 당했다. 2010년 카타르 오픈에서 5년 여 만에 2번째 승리를 거둘 때까지 11번 연속 졌다. 2011년 로테르담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패하면서 유승민은 왕하오와 상대 전적에서 2승 18패를 기록했다. 그 2승 중 1승이 바로 올림픽 결승전이었다.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던 왕하오는 이후 올림픽 단체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개인전에서는 아테네 이후 세 대회 연속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유승민이 2011년 로테르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왕하오와 대결하고 있다. 유승민은 왕하오를 상대로 2승 18패를 기록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왕하오를 이긴 임팩트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유승민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유승민은 한국 올림픽 역사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또 하나의 대기록을 갖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모두 딴 선수인 동시에 4위를 해 봤고, 1회전 탈락까지 경험했다.

어릴 때부터 ‘탁구 신동’ 소리를 듣던 그는 역대 최연소로 출전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인전에서 1회전에 탈락했다. 이철승과 짝을 이뤄 출전한 복식에서는 4위를 했다. 승부욕이 남달랐던 그는 귀국 후 “바다에 빠져 죽겠다”며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억울함이 이후 크나큰 동기부여가 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각각 따냈다. 금은동-4위-1회전 탈락의 콜렉션을 완성한 것이다.

유승민 IOC 위원(왼쪽)이 올해 2월 열린 2024 강원 청소년올림픽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등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처럼 다양한 경험은 그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도중 치러진 IOC 선수위원 투표에서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그의 선수위원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혈혈단신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선수촌을 누비며 선거 운동을 했다. 하루에 3만 5000보씩 걸어 다니면서 살도 5kg넘게 빠졌다.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선수들이 하나 둘씩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보다는 실패의 경험으로 선수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선수촌에 있는 1만 명 넘는 선수 중엔 메달을 따 본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훨씬 많다. 그래서 4위와 1회전 탈락의 경험을 말하면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전체 2위 당선되며 IOC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로선 또 한 번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데 성공한 셈이다.

유승민 IOC 위원과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기념 사진. 유승민 인스타그램
어느덧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그는 내달 열리는 파리 올림픽을 통해 8년간의 IOC 선수위원 임기를 마감한다. 새로운 한국인 IOC 후보로 결정된 ‘골프 여제’ 박인비가 뒤를 이어 파리 올림픽 대회 중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한다.

겉에서 볼 때 IOC 위원은 딱히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전 세계 곳곳을 돌아야 하는 게 IOC 위원의 숙명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IOC 관련 회의와 아시아스포츠평의회(OCA) 회의, 국제탁구연맹 관련 회의 및 각종 종목 단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년에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냈다. 8년간 탄 비행기 마일리지가 100만 마일에 가깝다.

촉박한 일정 탓에 무박 3일 또는 1박 3일로 해외에 다녀오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그는 “미국 뉴욕에 아침에 도착해 그날 일을 보고 저녁 리셉션에 참석한 뒤 곧바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면 무박 3일 일정이 된다”며 “무엇보다 체력이 버텨줘야 그런 강행군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대면 회의나 행사 뿐 아니라 줌 등을 이용한 비대면 회의도 수시로 열린다.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과의 시차 때문에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회의를 하는 날도 부지기수다.

올초 성공적으로 열린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유승민 IOC 위원(오른쪽)이 신유빈(가운데) 등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뉴스1
하지만 그는 지난 8년간의 선수위원 생활 내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경험과 함께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가 IOC 위원 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두 차례나 올림픽이 열렸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과 올해 초 열린 2024 강원 청소년겨울 올림픽이다. 2018 평창 올림픽에서는 선수촌장을 역임했고, 청소년 올림픽에서는 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자국에서 두 차례나 올림픽을 치렀다는 건 최고의 행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며 “성공적으로 치러진 두 대회에 조금이라나 힘을 보탰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의 임기 중이던 올해 2월 부산에서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대한탁구협회장이자 이 대회를 진두지휘한 그로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인 대회였다.

한국이 처음 이 대회를 유치한 것은 고 조양호 전 대한탁구회장이 재임 중이던 2018년이다. 그런데 당초 2020년 3월 열리기로 했던 이 대회는 대회 직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3차례나 연기된 끝에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승민 체제로 재도전한 끝에 2021년 국제탁구연맹(ITTF) 총회에서 다시 유치에 성공했고, 올해 2월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는 “8년 임기 중 가장 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번 어긋났던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오히려 6년간의 준비를 한 덕분에 국내외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며 “부산시와 대회 후원사들, 체육인들과 언론 등 모든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유승민 IOC 위원이 아파트 단지 내 피티니스 센터에서 운동 준비를 하고 있다. 유승민 제공
올해 초 그는 개인적인 도전에 나섰다. 8년간 잦은 출장과 각종 행사 참석,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망가진 몸을 새로 정비한 것이다.

은퇴 무렵 그의 몸무게는 73kg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1월 1일 체중계에 올라가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무려 10kg이나 늘어난 83kg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몸이 둔해 보인다는 소리도 들었던 터다.

그는 집중적인 감량에 돌입했다. 집 근처 광교산을 오르면서 땀을 흘렸다. 왕복 6km 거리의 산 정상을 뛰며, 걸으며 1시간 반 만에 주파하고 나며 땀이 비오듯 흘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 들어 근육운동도 시작했다. 해외 출장 중에는 방에서 팔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3개월을 운동하자 정확히 10kg이 그대로 빠졌다. 사라졌던 턱선이 돌아왔고, 부담스럽던 배도 쏙 들어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다부지게 바뀌었다. 그는 “많은 운동을 해 왔지만 칼로리 소모에는 등산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며 “여전히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해낸 감량이라 더욱 뿌듯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외국행 비행기에서 라면도 종종 먹곤 했다. 하지만 감량하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비행기에서 라면을 먹지 않았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한라산 정상에 오른 유승민 IOC 위원. 그는 평소엔 집 근처 광교산을 오르면 건강을 관리한다. 유승민 제공
한국 스포츠계에서 선수, 또 행정가로 그만큼 많은 것을 이루고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내달 IOC 선수위원 임기를 마치는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선수와 지도자, IOC 위원으로 열심히 달려온 그대로 앞으로도 한국 스포츠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고 했다.

쉽지만은 않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 때부터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걸 여러번 해 봤다. 두려움 없이, 열심히 치고 또 치다 보니 바위는 깨지더라.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