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오 이긴 비결? 유승민 IOC 위원 “달걀로 바위를 열심히 치면…”[이헌재의 인생홈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은 당시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평가받던 왕하오를 상대했다. 이전까지 유승민은 성인 무대에서 왕하오와 여섯 번 겨뤄 여섯 번 모두 패했다. 하지만 바로 그 경기에서 세계 탁구 역사상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유승민이 세트 스코어 4-2로 왕하오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
유승민은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부담감이 적었다. 반대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왕하오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선수대기실에서 왕하오를 봤는데 앉아서 다리를 떨고 있더라”며 “당시 내 몸 상태는 100%를 넘어 150%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이 잘 어우러져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던 왕하오는 이후 올림픽 단체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개인전에서는 아테네 이후 세 대회 연속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하지만 유승민은 한국 올림픽 역사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또 하나의 대기록을 갖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모두 딴 선수인 동시에 4위를 해 봤고, 1회전 탈락까지 경험했다.
어릴 때부터 ‘탁구 신동’ 소리를 듣던 그는 역대 최연소로 출전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인전에서 1회전에 탈락했다. 이철승과 짝을 이뤄 출전한 복식에서는 4위를 했다. 승부욕이 남달랐던 그는 귀국 후 “바다에 빠져 죽겠다”며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억울함이 이후 크나큰 동기부여가 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각각 따냈다. 금은동-4위-1회전 탈락의 콜렉션을 완성한 것이다.
당시 그의 선수위원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혈혈단신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선수촌을 누비며 선거 운동을 했다. 하루에 3만 5000보씩 걸어 다니면서 살도 5kg넘게 빠졌다.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선수들이 하나 둘씩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보다는 실패의 경험으로 선수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선수촌에 있는 1만 명 넘는 선수 중엔 메달을 따 본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훨씬 많다. 그래서 4위와 1회전 탈락의 경험을 말하면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전체 2위 당선되며 IOC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로선 또 한 번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데 성공한 셈이다.
겉에서 볼 때 IOC 위원은 딱히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전 세계 곳곳을 돌아야 하는 게 IOC 위원의 숙명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IOC 관련 회의와 아시아스포츠평의회(OCA) 회의, 국제탁구연맹 관련 회의 및 각종 종목 단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년에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냈다. 8년간 탄 비행기 마일리지가 100만 마일에 가깝다.
촉박한 일정 탓에 무박 3일 또는 1박 3일로 해외에 다녀오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그는 “미국 뉴욕에 아침에 도착해 그날 일을 보고 저녁 리셉션에 참석한 뒤 곧바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면 무박 3일 일정이 된다”며 “무엇보다 체력이 버텨줘야 그런 강행군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대면 회의나 행사 뿐 아니라 줌 등을 이용한 비대면 회의도 수시로 열린다.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과의 시차 때문에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회의를 하는 날도 부지기수다.
그의 임기 중이던 올해 2월 부산에서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대한탁구협회장이자 이 대회를 진두지휘한 그로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인 대회였다.
한국이 처음 이 대회를 유치한 것은 고 조양호 전 대한탁구회장이 재임 중이던 2018년이다. 그런데 당초 2020년 3월 열리기로 했던 이 대회는 대회 직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3차례나 연기된 끝에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승민 체제로 재도전한 끝에 2021년 국제탁구연맹(ITTF) 총회에서 다시 유치에 성공했고, 올해 2월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는 “8년 임기 중 가장 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번 어긋났던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오히려 6년간의 준비를 한 덕분에 국내외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며 “부산시와 대회 후원사들, 체육인들과 언론 등 모든분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은퇴 무렵 그의 몸무게는 73kg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1월 1일 체중계에 올라가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무려 10kg이나 늘어난 83kg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몸이 둔해 보인다는 소리도 들었던 터다.
그는 집중적인 감량에 돌입했다. 집 근처 광교산을 오르면서 땀을 흘렸다. 왕복 6km 거리의 산 정상을 뛰며, 걸으며 1시간 반 만에 주파하고 나며 땀이 비오듯 흘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 들어 근육운동도 시작했다. 해외 출장 중에는 방에서 팔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3개월을 운동하자 정확히 10kg이 그대로 빠졌다. 사라졌던 턱선이 돌아왔고, 부담스럽던 배도 쏙 들어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다부지게 바뀌었다. 그는 “많은 운동을 해 왔지만 칼로리 소모에는 등산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며 “여전히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해낸 감량이라 더욱 뿌듯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외국행 비행기에서 라면도 종종 먹곤 했다. 하지만 감량하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비행기에서 라면을 먹지 않았다. 그게 제일 힘들었다”며 웃었다.
쉽지만은 않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 때부터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걸 여러번 해 봤다. 두려움 없이, 열심히 치고 또 치다 보니 바위는 깨지더라.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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