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대 탄핵, 민심 얻어야 이긴다[오승훈의 시론]

2024. 6. 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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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논설위원
野, 尹정부 압살用 특검법 몰이
거부권 행사시 탄핵소추 겁박
노무현 탄핵도 거부권이 뇌관
루스벨트, 거부권 행사 잦아도
국민설득 리더십으로 존경받아
명분 세울 결단해야 국정 동력

윤석열 정부 ‘압살 작전’인 듯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작전사령관이다. 국회는 이미 접수돼 민주당 의원총회로 전락했다. 법제사법위를 비롯해 위원장 자리를 꿰찬 11개 상임위원회는 돌격대의 전장이 됐다. 의회 독재, 입법 폭주란 비판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총선 민심 왜곡이란 면박 역시 들은 척도 안 한다.

최대 타깃은 윤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채상병특검법과 김건희특검법이다. 채상병 사건은 ‘항명’과 ‘외압’ 사이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명품백’의 경우 사실관계와 법리보다 국민정서법 문제가 돼버렸다. 민주당이 화력을 집중할 취약 지점들이다. 지난 21일 야당 단독으로 열린 법사위의 채상병특검법 관련 입법청문회가 1차 공세였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등에 ‘벌 세우기 퇴장’ 쇼까지 벌였다. 법사위를 통과했으니 본회의 처리는 시간문제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21일 “순직 1주기(7월 19일) 전에 통과시킬 것”이라고 했다.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특검법안은 법리상 하자가 많다. 여권이 다시 거부권을 되뇌는 사정이 이해된다. “미국 대통령제 역사상 총 2595건의 대통령 거부권이 발동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63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탄핵이 거론되진 않았다”(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항변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 시 탄핵’ 깃발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108석)이 저지선(100석)을 확보하고 있다지만, 8명은 얼마든지 흔들릴 숫자로 본다. 7월 전당대회에서 누가 여당 대표로 등장해도, 용산과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강해질 터다. 미래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될수록 현재 권력의 유효기간은 줄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탄핵소추안 발의가 연쇄 작동하는 정치 역학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실증된 것이다. 노무현은 동교동계와 갈등이 누적돼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47석)이 창당됐다. 여당이 제3당이 됐다. 노무현은 원내 1당 한나라당(141석)이 제기한 1차 대북송금사건특검법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공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원수의 외교적 행위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반발했으나,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받아들였다. 갈등 수위가 높아지자 노무현은 그해 7월 2차 대북송금특검법에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의결에서도 부결돼 폐기됐다. 야당은 11월 최도술 등 노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을 통과시켰는데, 노무현은 또 거부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에 ‘보복연대’가 가동됐다. 12월 재의결에서 의결정족수를 31표나 넘기며 가결됐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04년 3월 12일 찬성 193명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꼬투리를 잡은 건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었으나, 연속된 거부권이 뇌관이었다. 노무현은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 때까지 63일간 유폐 생활을 해야 했다.

거부권과 탄핵소추권이 헌법상 원리만 강조돼 충돌하면, 정치는 극한 대립으로 오작동한다. 상호 견제의 삼권분립이 가진 취약점이다. 추 원내대표는 루스벨트가 12년 재임 중 매년 53회꼴로 거부권을 행사했음을 거론했으나, 그가 탄핵 논란 없이 미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남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거부권을 행사한 635개 법안 중 9건만이 재의결됐다. 거부한 이유를 직접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한 리더십 덕분이다.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30번의 노변정담(Fireside chats)이 상징하듯, 대국민 소통에서 명분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거부권은 대통령 권한’ ‘수사가 우선’이란 입장만 되풀이하면 정국은 악순환의 궤도를 돌 것이다. 상대에 명분을 주지 않으려면 나의 명분이 더 민심에 가까워야 한다. 무도한 ‘이재명 방탄’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근원적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명분을 빼앗든, 새로 세우든, 결단해야 한다. 한동훈 전 장관이 불을 지폈다. 역학 작동의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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