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축소되는 세계' 저자 앨런 말라흐 |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는 필연, 해결보다 ‘관리’ 초점 맞춰야”
한국 정부가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은 279조9000억원.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했고, 198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율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역대 정부는 물론 현 정부도 각종 재정 지원책은 물론 출산을 꺼리게 하는 경제·사회구조를 바꾸는 처방을 내놓으며 ‘아이를 낳아라’고 외친다.
그 와중에 도시 계획 전문가 앨런 말라흐(Alan Mallach)는 책 ‘축소되는 세계’에서 ‘출산율 증가’라는 접근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지금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라며 “인구 감소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구든, 경제든 ‘성장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겼던 사고방식이 틀렸음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말라흐와 최근 줌으로 인터뷰했다. 말라흐는 “한국은 202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성장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인구 감소를 실패 신호로 여기는 한 인구가 감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비관주의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인구 감소로 인한 영향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인구 감소를 결과가 아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야 한다” 고 강조했다. 말라흐는 55년 넘게 주택 및 도시 관련 분야에서 일한 도시 계획 전문가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반영하듯 출산율이 줄어들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축소 도시(shrink-ing city·짧은 기간 안에 상당수의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가 등장할 것이라 봤다. 그는 “많은 나라의 인구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세상에서 축소 도시는 더 이상 이례적인 존재나 아웃라이어(outlier)가 아니다”라며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축소 도시가 표준이 돼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축소 도시라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민관이 협력한다면 경제 발전을 이어갈 수 있다며 희망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위대한 도시를 인구가 많은 도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듯이 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 인구 감소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한 부분이 충격적이다.
“인구 감소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전 세계 선진국 대부분의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2.1명 미만이다. 2008년에 대체출산율(현재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보다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한 64개국 중 이란을 제외한 63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에도 여전히 대체출산율을 밑돌았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합계출산율도 2.1명 이하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장기적인 추세다.”
한국의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이다. 1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로 1년 전(0.82명)보다 0.06명 줄며 처음으로 0.8명 선이 붕괴했다. 이런 추세면 올해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 정책은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왜 그런가.
“한국 정부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정부도 출산 가정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정부가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으면 출산율이 조금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는 경향이 있고 출산율은 머지않아 대체출산율보다 낮은 수준으로 돌아간다. 정치인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이건 부분적인 이유일 뿐이다. 프랑스를 보라. 프랑스는 수년 동안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수십억유로를 지출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대체출산율보다 낮다. 프랑스 인구가 늘고 있는 건 출산율 증가가 아닌 이민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도시가 당신이 말한 '축소 도시'가 되나. 축소 도시란 뭔가.
“짧은 시간에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를 말한다. 오랫동안 나와 동료들은 도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이상한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5년 전부터 축소 도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인구통계 등을 분석한 결과, 축소 도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다.”
축소 도시 간에도, 도시 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했다. 완화할 방법은.
“정부의 신중한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취약 지역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술 허브’ 다. 자원을 재분배하고 취약한 지역의 경제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시도다. 인구 약 15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인 뉴욕주(州) 시러큐스는 대표적인 사례다. 바이든 정부는 시러큐스에 공장을 건설 중인 마이크론(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26일(현지시각) 시러큐스를 찾아 마이크론에 61억4000만달러(약 8조4719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미 상무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뉴욕주와 아이다호주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뉴욕주와 아이다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투자가 될 것”이라며 “2만 개의 직접 건설 및 제조 일자리와 수만 개의 간접 일자리를 포함해 7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축소 도시였지만, 정부 도움 없이 여파를 극복한 사례는.
“피츠버그와 볼티모어에 있는 공장은 미국 제조업 쇠퇴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과 의료 서비스 분야 덕분에 경제를 재건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미국 경제에서 교육과 의료, 그중에서도 의료의 중요성이 커진 영향이다. 의료 부문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 5%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18%로 늘었다. 존스홉킨스대 의료센터는 볼티모어 최대의 고용주가 됐고 피츠버그대 의료센터는 현재 펜실베이니아주의 민간 부문 최대 고용주다.”
한국에 남길 조언이 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잘 작동하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86개 도시 중 31곳의 인구가 줄었다.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도시의 인구가 10% 이상 감소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의 경제는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계속 성장하겠지만, 다른 지역은 역성장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건강한 지역 경제와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정부와 주요 대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축소 도시가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축소 도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역량과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협력, 주민과 민관 지도자의 의사소통, 지역사회의 인적자본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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