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 세계 <15> 삼체] 맨해튼을 덮은 돔과 루브르 아부다비
‘삼체문제’는 세 물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과 그에 따른 궤도 움직임을 다룬다. 예를 들어, 태양, 지구, 달이 서로 중력으로 묶여 움직일 때 일정 시간 이후 세 천체의 위치를 수식으로 예측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두 물체 사이의 운동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보편적인 수식화가 가능하지만, 세 물체 사이에서는 각 물체가 미세한 조건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운동을 달리한다. 1887년,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삼체문제에서 일반해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고, 이는 혼돈 이론의 시작과 연결됐다.
2024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는 세 개의 태양을 가진 삼중 항성계에 자리한 외계 문명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삼체인’으로 명명된 지적 생명체는 삼체문제로 인한 중력 이상과 초고온, 초저온 같은 기후 혼돈의 환경에 시달린다. 모든 태양이 동시에 뜰 때 대기가 타버려 문명이 멸망하고, 저온기에 이를 재건하기를 반복한다. 예측할 수 없는 혹독한 환경과의 투쟁 끝에 삼체인은 안정적인 환경의 지구를 대안처로 삼고 침공을 위해 떠난다.
세계를 에워싸 감시하는 표면
태양계에서 4.37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출발한 삼체인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는 400년이 걸린다. 만약 지구의 문명이 계속해서 발전한다면, 인류는 삼체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침략 함대를 저지할 능력을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 두려워한 삼체인은 인류의 과학기술을 파괴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소폰(Sophon)’이라는 슈퍼컴퓨터를 지구에 먼저 파견한다. 물질의 고차원 구조를 다룰 수 있는 삼체인은 11차원의 단일 양성자를 이차원으로 펼쳐 컴퓨터 회로를 식각한 후, 다시 11차원으로 접어 소폰을 만들었다. 빛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한 소폰은 5년 안에 지구에 도착한다.
세계 속에 침투해 있던 소폰은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전 인류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고차원으로 접혀 있던 소폰은 이차원의 거시 세계에서 지구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표면으로 전개된다. 모든 도시의 하늘이 점진적으로 펼쳐지는 보자기 같은 막에잠식되고, 거울처럼 지상의 모습을 역상으로 비추면서 평행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세계를 에워싸고 있는 막의 풍경은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빅 브러더 같은 삼체인의 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더해 도시의 전광판,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디어 화면에 일제히 하나의 문장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너희는 벌레다.”
대안적 환경을 조성하는 유리 표면
소폰의 막은 우주에서 볼 때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구의 형태다. 그러나 지구 내부에 있는 사람의 시점에서는 하늘을 덮은 거대한 반구형 돔으로 인식된다. 건축에서 돔의 형식은 달걀 껍질처럼 표면 자체의 구조만으로 하중을 지지한다. 돔의 표면은 이러한 구조적 특성을 통해 유연하게 확장하면서 개별 공간을 넘어 총체적인 환경을 내부에 포용할 수 있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벅민스터 풀러가 1960년에 제안한 ‘맨해튼을 덮은 돔(Dome over Manhattan)’은 드라마와 유사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 프로젝트는 뉴욕의 마천루 숲을 지름 3㎞, 높이 1.6㎞의 반투명한 돔으로 덮어 감싸자는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돔의 목적은 인류의 통제가 아닌, 에너지와 자원 문제로부터의 인류 해방이다. 풀러는 삼각형 격자 구조와 파손 방지 유리 돔으로 도시를 온실 환경으로 만들어서 기후를 안전하게 조절하고, 공기 오염을 줄일 것을 제안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돔 내부의 건물 표면적의 합은 돔의 표면 면적의 80배에 달하는데, 이는 도시의 열 손실을 80배 개선하고, 냉난방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20%로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돔은 폭설과 폭우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 10년간의 제설 작업과 도로 유지 비용만으로도 돔 건설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
돔을 투과한 빛으로 채워지는 예술 환경
2018년 아부다비의 사디야트 섬에 완공된 루브르박물관은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 충만한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 돔을 덮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은 아랍 국가의 정체성과 연관된 두 가지 토속적인 맥락으로부터 박물관을 설계했다. 첫 번째 맥락은 해안가의 정착촌이었다. 건축가는 큰 규모의 단일 건물 대신, 내부로 끌어들인 바닷물을 따라 55개의 저층 건물을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백색 박스의 크고 작은 건물이 골목길, 광장, 내부 중정, 공동 공간을 중심으로 연결되면서 오래된 마을 구조를 형성한다.
마을의 중심부는 지름 180m의 금속 돔이 건물군 전체를 덮고 있다. 돔의 그림자는 태양으로부터 내부 환경을 보호하고, 바람이 스며들어 공기를 시원하게 만든다. 돔 설계는 오아시스와 야자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햇빛이 겹겹이 쌓인 잎사귀 사이로 들어오면서 바람에 움직이는 야자수는 단편적인 어둠이 아닌 빛이 풍부하게 깃든 그늘을 만들어낸다. 건축가는 이러한 현상의 재현을 위해 돔을 아홉 겹의 층으로 구성하여 깊이감을 만들었다. 각 층위에는 아랍 전통 별 문양을 모티브로 한 7850개의 금속 프로파일을 서로 포개지지 않도록 다른 각도로 회전해 중첩했다. 햇빛은 두꺼운 돔 구조의 복잡한 경로 사이를 굴절하여 통과하면서 하부 공간과 수면 위에 잔잔한 빛의 향연을 펼친다. 건축가는 이를 ‘비처럼 내리는 빛’으로 정의하면서, 빛과 그림자, 반사와 고요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환영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구름 표면을 덮은 인공 환경
인류는 건축 이외의 방식으로도 공간을 에워싸 환경을 조절하기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다. 2024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구름 표백 실험’이 진행됐다. 바닷물의 미세입자를 안개처럼 대기 중으로 분사해, 소금 결정이 구름을 더욱 조밀하게 만드는 원리다. 인공 구름을 통해 태양 빛의 입사량을 줄여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짙은 백색의 밀도 높은 구름이 형성하는 거대한 돔의 환경을 상상케 한다. 인공 환경은 권력 구조부터 개인의 감각적 경험까지 포괄하는 복잡한 변수들과 연관되어 있다. 기후 재앙에 대응하기 위한 인공 환경의 조성은 삼체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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