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아우로라 윌리엄스 칠레 광업부 장관 | “20년 FTA 우정 바탕으로 한국과 리튬·구리 개발 협력 기대”
‘새로운 석유’로 불리는 21세기 핵심 광물이 두 종류나 묻혀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이자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의 최대 매장국인 칠레 얘기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거의 모든 종류의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원자재로, 최근 전기차가 인기를 얻으며 덩달아 몸값이 높아졌다. 미국지질조사국(USGC)에 따르면 칠레는 리튬 매장량 세계 1위, 생산량은 2위다.
구리는 인공지능(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 필수 인프라인 데이터센터에 다량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다루는 전력망에 구리가 쓰이는 등 친환경 산업 확대도 구리 수요를 끌어 올렸다. USGC에 따르면 2023년 국가별 구리 생산량은 칠레(23%), 페루(12%), 콩고(11%), 중국(8%), 미국(5%)순이다.
그런 칠레의 광업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아우로라 윌리엄스 광업부 장관은 리튬·구리 개발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한국에 다녀갔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칠레가 두 자원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구애를 받던 지난해 9월, 그를 광업부 장관 자리에 앉혔다. 윌리엄스 장관은 칠레의 제33대, 제35대 대통령을 역임한 미첼레 바첼레트 대통령(보리치 대통령은 37대)의 두 번째 임기(2014~2018년) 동안 광업부 장관을 지냈다. 그만큼 칠레 정부에서 그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는 얘기다.
윌리엄스 장관은 방한 기간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한·칠레 핵심 광물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 참여했다. 여기에는 SK엔무브, LS MnM, LX인터내셔널, 포스코홀딩스, 현대자동차 등 우리 기업이 참석했다. 윌리엄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칠레의 주요 핵심 광물 정책을 직접 소개했다.
윌리엄스 장관을 서울 중구 주한 칠레 대사관에서 독점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긴밀히 협력해 온 한국은 칠레의 리튬·구리 개발을 통해서도 관계를 심화시킬 여지가 많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리튬과 구리가 칠레는 물론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장관으로서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칠레는 대표적인 광업 국가다. 특히 구리생산에서는 100년 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칠레 정부는 언제나 핵심 광물 자원을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리튬과 구리는 기후변화 대응에 매우 중요한 광물인 만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개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전체 염호(鹽湖)의 30% 정도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한다. 시민사회, 원주민 공동체와 열린 대화를 통해 개발에 따르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보리치 정부는 리튬 분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국가 리튬 전략을 발표했다. 국가 주도하에 민관 협력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과 기술 발전에 중점을 두고 생산과 환경 보존을 조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탄산리튬 생산을 2020년대 말까지 최대 50만t 수준으로 두 배 늘리는 동시에 환경, 사회문제와 최적의 균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리의 경우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개발과 환경의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공급을 늘릴 수 있을까.
“광업은 긴 개발 주기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수요가 갑자기 늘어난다고 해서 그에 맞춰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는 건 어렵다. 앞서 언급한 환경 영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자원 개발 관련 두 개의 법안이 칠레 의회에서 발의됐는데 둘 다 자원 개발 프로젝트 평가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 골자다.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단계를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하면 공급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칠레의 광업에서도 첨단기술 접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원격 제어 기능을 포함한 자동화와 AI 기술 접목은 채굴의 정밀도와 효율성 개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칠레는 광업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을 제조업과 융합해 스마트 공장을 구축하는) 인더스트리 4.0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술을 통합했다. 그 결과로 통합 운영 시스템(Integrated Operation System)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자동화와 AI 접목이 칠레 광업에서 고용에 미친 긍정적인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과거 현장에 상주하면서 어렵고 힘든 작업을 해야 했던 업무에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광업 분야에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칠레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칠레 국영 광업 기업인 코델코(Codelco) 그리고 칠레광물공사(Enami)와 협력할 기업을 초청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또한, 국내 및 해외 투자자에게 칠레의 리튬 매장지 탐사 또는 개발에 관심을 표명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외 전문 리튬 생산 업체를 상대로 아타카마 염호에서 생산하는 탄산리튬 생산량의 25%를 할당하는 입찰 계획을 발표했다. 칠레 안에서 이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특별한 가격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어떤 점에서 한국과 칠레의 광업 분야 협력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는지.
“칠레와 한국은 2004년에 발효한 FTA를 토대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주요 광물 개발 프로젝트 관련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칠레는 한국이 칠레에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칠레와 한국은 리튬·구리 개발에 있어 엄격한 기준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양국은 주요 광물 가치 사슬이 엄격한 사회 및 환경보호 조치를 준수하여 채굴이 이루어지는 지역을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칠레 FTA는 칠레가 아시아 시장에, 한국이 중남미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23년 한국과 칠레의 무역액은 79억9300만달러(약 11조280억원)였다. 칠레의 한국 수출액은 60억5400만달러(약 8조3533억원), 수입액은 19억3800만달러(약 2조6740억원)였다. 2004년 칠레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품목 수는 193개였는데, 2020년에는 331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칠레 기업 수는 354개에서 576개로 늘었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게 되면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칠레 정부의 원칙도 달라지는 건 아닐까.
“칠레는 법과 계약, 약속을 준수하는 국가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국가 전략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책임감 있게 설정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자원 개발은 정치적 판단이 아닌 기술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원칙은 지켜질 것이다.”
칠레·아르헨티나·멕시코·볼리비아 등 중남미 리튬 부국들이 중동의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모델로 리튬 기구를 만들려 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적이 있다. 칠레의 입장은.
“칠레는 지금까지 그런 이니셔티브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리튬판 OPEC’은 생산국 간의 치열한 경쟁에 더해 국가별로 상이한 정책으로 실현이 쉽지 않다.”
2022년 7월 중남미·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 정상회의에서는 리튬 협의 기구 결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된 바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캐나다 광물탐사개발협회(PDAC)’ 연차총회에서 아빌라 아르헨티나 광물부 차관이 “아르헨티나와 칠레, 볼리비아, 브라질 등이 중남미 지역에서 채굴된 리튬을 배터리 원료로 가공하고 배터리, 전기차 제조를 시작하기 위한 협력에 나선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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