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미술관 산책 <11>] ‘민중을 이끄는 자유’ 속 여성은 누구일까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2024. 6. 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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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 캔버스에 유채, 260×325㎝, 1830. /위키피디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éne Delacroix)가 프랑스 7월 혁명 당시 ‘영광의 3일’을 표현한 역사화다. 1830년 절대 왕정 복원을 꿈꾸던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오르며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대적 사건을 표현한다. 가로 260㎝, 세로 325㎝의 대형 그림인데, 대형 그림은 주제를 더 장엄하고 숭고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그림 구성은 피라미드 형태다. 한 손에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장총을 들고, 자유를 의인화한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앙의 여성이 중심인물이다. 배경의 오른쪽 노트르담의 탑은 봉기가 일어나는 시대적 장소가 파리임을 나타낸다.

정철훈 미술 칼럼니스트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사진 정철훈

‘자유의 여신’이 아니라 ‘자유’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의역되지만, 그림 속 여성은 실재했던 인물이나 여신이 아니다. ‘자유’를 상징하는 의인화된 인물 마리안(Marianne)이다. 마리안은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공화정이 국가적으로 의인화한 인물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프랑스 시청, 법원 등 정부 청사나 광장, 동전, 우표에 등장한다.

프랑스어로 자유(Liberté)가 ‘라 리베르테(La liberté·La는 여성 단수 명사 앞에 붙는 관사)’로 표기되고, 프랑스 공화국이 ‘라 프랑스(La France)’ ‘라 리퍼블리크(La Ré-publique)’로 불리는 것도 마리안과 관련된 것이라 하겠다. 마리안은 당시 여성의 가장 흔한 이름인 ‘마리’와 ‘안느’를 결합해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들라크루아는 마리안을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그림 중앙에 배치했다. 마리안 왼쪽 아래에서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서 일어서려는 남성은 사선으로 삼색기를 든 마리안과 일체감을 이루며, 남성이 입고 있는 옷의 색상도 삼색기와 묘한 대응을 이룬다. 혁명 성공을 상징하는 삼색기를 남성 옷에서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통해 작가는 밑으로부터 일어나는 혁명의 열기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리안은 붉은 모자를 쓰고 있다. 그림에서 붉은 모자는 중요한 매체다. 프리기아로 불리는 이 모자는 일명 ‘자유 모자’라고도 한다. 후기 로마공화정 시대,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의 상징이었다. 프랑스혁명 당시엔 왕정에 대항하는 시민의 표식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들라크루아는 붉은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민중을 이끄는 마리안을 그림 중심에 두었다. 그녀가 쓴 모자가 삼색기와 더불어 자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신분을 나타내는 모자

마리안의 프리기아 모자가 자유를 상징하듯, 들라크루아는 모자를 통해 등장하는 인물의 신분을 표현했다. 그림에서 마리안 왼쪽에 두 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먼저 높은 모자를 쓰고 양복을 입고,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장총을 든 남성이 보인다. 작가는 이 인물을 신흥 중산층을 대표하는 부르주아로 표현하고 있다. 높은 모자를 쓴 남성이 시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들라크루아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으나 이는정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르주아 남성의 눈빛은 다소 놀란 듯해, 뒤편에 있는 맹렬한 눈빛의 남성과 대비된다. 이는 신분에 따라 시위를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보여준다.또 권총을 허리에 차고, 칼을 든 채 머리에 베레모처럼 생긴 모자를 착용한 남성은 붉은색 자유주의 리본과 멜빵바지를 입은 모습에서 공장 노동자 신분임을 짐작게 한다.

마리안 오른쪽에 있는 소년은 모자를 통해 학생임을 알 수 있다. 당시 프랑스 학생은 검은색 벨벳 베레모를 쓰고 어깨에 가방을 걸쳤다. 그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고 하나도 아닌 두 개의 권총을 들고 싸울 것을 촉구하는 듯, 가장 적극적인 모습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년이 학생이 아닌 어린 노동자라는 주장도 있다. 그림하단에는 쓰러진 군인 복장을 한 남성의 머리 옆에 왕실 군을 상징하는 화려한 철모가 놓여있는데, 이는 처참하게 무너진 절대군주제를 상징한다.

이처럼 ‘민중을 이끄는 자유’에서 등장인물의 모자는 다양한 사람을 상징한다. 동시에 이질적 계층의 사람이 신분을 초월해서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들라크루아는 부르주아와 노동자, 어린 학생과 여성이 모두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역사화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림 구도가 마리안의 머리를 중심으로 피라미드 형태인 것도 등장인물 간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노트르담대성당 위에서 보일 듯 말 듯 펄럭이는 삼색기. /위키피디아
바리케이드에 새겨진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인과 제작 연도(1830년). /위키피디아

바리케이드와 노트르담대성당

들라크루아는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을 ‘바리케이드 장면’이라고 명명했다. 그럴 정도로 바리케이드는 이 그림에서 중요한 장치다. 그림 오른쪽에는 막대기 모양의 바리케이드가 그려졌고, 1830년이라는 붉은 글씨가 적혔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 왕궁으로 향하는 장면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다. 바리케이드는 군주제와 왕실의 표식이며, 민중에 대한 억압 도구, 구체제로 설정된다. 들라크루아는 그림을 그릴 당시 형제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근대적인 주제, 바리케이드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비록 시위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나는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썼다. 구 체제의 붕괴를 간절히 바란 뜻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열정적인 마음을 담아 3개월 만에 그림을 완성했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장치는 노트르담대성당이다. 노트르담대성당에 보일 듯 말 듯 펄럭이는 삼색기가 그려졌다. 노트르담대성당은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 대관식을 거행한 장소다.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지 불과 1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삼색기는 자유를 향한 7월 혁명의 승리를 의미한다. 민중의 승리를 확인하는 상징이자, 공식적인 승리의 대표성을 담는 것이다.

‘서양미술사’를 저술한 곰브리치는 들라크루아에 대해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 배출된 위대한 혁명가로,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지닌 복잡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들라크루아는 당시 미술의 질서인 신고전주의의 정제된 묘사와 선을 거부했다. 반대로 색과 상상력을 지향하며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성취하려 했다. 낭만주의로의 지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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