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준의 돈 이야기 <48>] 20달러 지폐에 새겨진 얼굴의 의미… 서부 지역 출신 첫 美 대통령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2024. 6. 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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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달러 화폐에 그려진 앤드루 잭슨 제7대 미국 대통령. /셔터스톡

오늘날 미국의 지폐는 1달러, 2달러, 5달러, 10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의 일곱 가지 권종이 있다. 각각의 지폐 앞면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다. 순서대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알렉산더 해밀턴, 앤드루 잭슨, 율리시스 그랜트,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이라는 나라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렇듯 미국의 화폐에는 미국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사진 신상준

적은 나의 친구

2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미국의 제7대 대통령(1829~37년) 앤드루 잭슨(1767~ 1845년)은 캐롤라이나 서부의 변경(邊境)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 사람들은 그를 인디언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가 인디언의 영혼을 물려받은 것인지 혈통을 물려받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독립전쟁(1775~83년) 말기인 1781년 영국군이 캐롤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영국군에 살해됐다. 이런 비극적 경험은 그에게 영국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했다. 잭슨은 14세 나이로 감옥에 투옥됐는데, 이 상황에서도 영국군 장교의 군화를 닦는 일을 거부할 정도였다. 그는 이 때문에 군도로 맞아 얼굴에 흉터가 남았다. 미국 혁명이 끝난 후 그는 혼자서 법학을 공부했고, 미개척 정착지였던 테네시주로 이주하여 21세에 변호사로 성공했다. 그는 주로 채권 추심(빚 받아내기) 소송을 담당했고, 이를 통해 토지 소유자 및 채권자들과 인연을 쌓았다. 이후 테네시주는 평생토록 잭슨의 정치적 영지(領地)가 되었다.

잭슨의 전기를 읽다 보면 필립 마이어의 소설 ‘더 선(The Son)’이 떠오른다. 물론 소설의 배경은 이보다 한 세대 이후의 텍사스고, 주인공은 냉혹한 민병 대원에서 석유 재벌로 변신한 사나이다. 소설의 주인공 엘리 맥컬러는 가난한 변경 정착민의 아들인데, 어머니와 누이가 자신의 눈앞에서 코만치 부족에게 능욕당하고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어린 맥컬러 형제는 코만치의 노예로 끌려간다. 코만치는 거칠고 반항적인 엘리의 형을 창으로 위협하다 실수로 죽이고 만다. 코만치의 전통에 따르면, 죽은 적(敵)의 영혼이 부활하지 못하도록 머리 가죽을 벗겨내야 하는데, 상대방이 별종이면 머리 가죽을 벗길 수 없다고 한다. 거칠고 변화가 많은 환경에서 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별종의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숨통을 이어가는 별종을 혁신가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코만치는 별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자신들이 아끼는 담요, 활, 화살통을 시신과 함께 묻으며 경건한 장례를 치러준다. 잭슨의 전기를 읽다 보면 미국은 처음부터 별종 정신이 가득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입만 열면 미국 사례를 들먹이다가도 정작 사람을 쓸 땐 만만한 ‘예스맨’과 범생이만 갖다 쓰고, 결국 정체의 늪에 빠져버린 어느 신흥국과 그 중앙은행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잭슨 스퀘어. /셔터스톡

대법관 출신 군사령관

잭슨은 1796년 테네시주 제헌의원으로 선출돼 테네시주 헌법 초안을 만들었고, 같은 해 29세로 테네시주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미국 상원은 오늘날처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연방참사원처럼 지방국(주의회)이 직접 연방의회에 파견해 지방국의 대리인과 같았다. 따라서 연방의회에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하원이 지방국이 파견한 상원보다 우월적 지위를누렸다. 임기를 마치고 귀향한 잭슨은 30세에 테네시주 상원의원으로 임명됐다. 이것은 국가적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두 정치 세력인 연방파(지금의 공화당)와 공화파(지금의 민주당)가 무시할 수 없는 지도자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잭슨은 상원의원직을 사임하고 귀향했으나 테네시 주대법원 판사와 테네시주 민병대 사령관으로 선출됐다.

1812년 미국과 영국 간 전쟁이 벌어지자, 연방정부는 잭슨에게 ‘영국과 동맹을 맺고 미국 남부를 위협하는 크리크 인디언에게 맞서 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1814년 잭슨은 앨라배마의 토호페카 전투(호스슈벤드 전투)에서 크리크족을 괴멸시키면서 서부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1814년 잭슨은 연방정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스페인 소유의 플로리다를 침략했다. 스페인이 영국의 동맹이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잭슨은 이곳에서 영국군 주력 부대가 미국 남부 중심지인 뉴올리언스로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한다. 1815년 1월 잭슨은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영국군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긴다. 연이은 패전으로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워싱턴 정가에 잭슨의 승전보가 전해진다. 하지만 1814년 12월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영국과 평화조약(겐트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잭슨의 승리는 미국인에게 기쁨과 안도감을 가져다주었고, 잭슨은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1822년 테네시 주의회는 잭슨을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1824년 대선에 네 명의 후보자가 나섰는데, 앤드루 잭슨(99표), 존 애덤스(84표), 윌리엄 크로퍼드(41표), 헨리 클레이(37표)순으로 선거인단의 지지를 받았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었기 때문에 연방하원에서 상위 3인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했다. 애덤스(2위)는 하원의장 클레이(4위)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내어주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잭슨의 추종자들은 애덤스와 클레이 사이의 부패한 거래를 응징하기로 결심했고, 1828년 대선에서 잭슨을 다시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잭슨은 애덤스를 178 대 83으로 압도했다. 하지만 이 선거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인신공격과 중상모략이 횡행했고, 그로 인해 잭슨은 아내를 잃었다.

잭슨 민주주의

1828년 선거는 미국 정치사의 전환점으로 간주된다. 잭슨은 최초의 서부 지역 출신 대통령이었다. 입후보에 대한 주도권과 캠페인 조직의 리더십이 서부에서 나왔으므로, 정치권력의 중심은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갔다. 잭슨은 또 기성 정치조직의 지원을 받지 않고 유권자 대중에게 직접 호소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 6개의 새로운 주가 연방에 편입됐고, 그중 5개 주가 남성에게 보통 선거권을 부여했다. 기존 주에서도 선거법이 개정되어 유권자가 확대됐고, 미 대륙 전체에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기존 정치조직의 힘이 약화되면서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데 능숙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노예제도가 여전히 존재했고, 사회는 기독교 경전에 근거한 소극적 여성상에 갇혀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잭슨은 미국인이 대통령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그는 중앙정부 요직을 거치지 않았고, 외교 경험도 없는 그야말로 ‘아마추어’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잭슨은 인생의 고비마다 난관을 헤쳐 온 방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단호하게 대처했고, 군사령관으로서의 활력과 결단력을 보여줬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자신이 행정부의 주인임을 분명히 밝혔다. 때로는 그의 의지가 너무 완고해서 정적들은 그를 ‘앤드루 1세(King Andrew I)’라고 불렀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면 잭슨은 자신을 선출하는 데 도움을 준 비공식 그룹에 의존했는데, 이들은 정적으로부터 잭슨의 ‘부엌 내각(kitchen cabinet)’이라고 불렸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제의 기틀을 마련한 잭슨의 정치 방식을 가리켜 후대의 역사가들은 ‘잭슨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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