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투자 프레임 <18>] 서머랠리 기대 높이는 ‘밸류업 모멘텀’…현실은 ‘차분한 여름’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2024. 6. 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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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상반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연초 부푼 기대를 품고 출발했던 국내 증시는 코스피 지수가 2700포인트 수준에 머무르며 사실상 박스권에 갇혀 있다. 미국 증시는 전 고점을 지속 돌파했고, 중국 및 일본 증시 역시 연초 대비 15~20% 상승세를 보인 반면, 국내 증시만 유독 부진한 모습이다. 일부 투자자는 주요국 증시와 키 맞추기를 예상하며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서머랠리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국내 수출 증가율이 둔화할 가능성이 크고, 내수 경기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추세적인 기업 실적 개선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인공지능(AI) 주도하에 반도체가 견인하는 이익 전망은 유효하나 여전히 부진한 수요 및 높은 비용(금리 등)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기업 이익 증가율이 둔화할 때 주식시장이 우상향 흐름을 이어가려면 주주 환원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상반기 한때 코스피를 2800포인트 부근까지 견인했던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모멘텀이 하반기 중 재개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5월 밸류업 지원 방안 중 하나인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이 공개됐고, 하반기에는 보다 구체적인 공시 등을 통해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는 상장사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상반기 업종별 수익률을 보면 AI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가 1위를 기록했으며 금융, 유틸리티, 자동차 등 밸류업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 2~4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하반기에도 밸류업 모멘텀이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가 증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윤지호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기업 유인책 부족한 韓 밸류업 프로그램

문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와 현실 사이에 일정 부분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크하고 있는데, 일본은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은 2023년 3월 시행된 ‘기업 가치 제고 조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가이드라인 역시 이와 동일한 방향성과 세부 프로세스를 채택하고 있는데, ROE (자기자본이익률), PBR(주가순자산비율) 등 기업 가치 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재무 지표를 활용해 사업 현황을 진단하고 중장기적 기업 가치 제고 목표 및 계획을 수립하는 절차다. 이 과정에서 신규 투자를 증대하거나 주주 환원 확대 방안(배당 및 자사주 소각 등)을 제시하고, 확정된 계획안은 지속적인 평가와 시장 참여자와 소통 과정을 거쳐 피드백을 받게 되는 구조다.

하지만 일본이 상장사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조치를 최초로 도입한 것은 2014~ 2015년이다. 일본 공적 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적용하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모범 규준을 제정하는 등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토대는 이미 장기간에 걸쳐 마련된 것이다. 2020년 이후로는 기업의 사외이사 역할을 강화하는 조치가 추가되고, 상장 시장 개편 작업을 통해 본격적인 증시 부양 조치가 병행됐다.

한국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지만, 일본이 10여 년간에 걸쳐 추진했던 밸류업 프로그램 성과를 단기간에 도출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의 자율적인 참여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장기간에 걸쳐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하고,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기조를 확립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이제 밸류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시점에서 기업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유인책이 부족하다. 정부의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공표된 후 수혜주로 분류됐던 금융, 자동차, 지주 등 관련 업종 주가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이유다.

핵심 이슈는 세제와 관련한 인센티브 조치의 도입 여부다. 대표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 환원을 확대하는 기업에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조치가 밸류업 초기부터 논의돼 왔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되지 않고 있으며, 법인세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시기를 예상하기 힘들다. 상장 기업 입장에선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부분에 대한 혜택이 전혀 없으면 기업 가치가 저평가 상태에 있다 해도 주주 환원을 크게 확대할 유인이 부족하다.

상속세 부담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대주주 상속 세율은 최대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0%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또한 시가 기준으로 상속세가 책정되기 때문에 대주주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 제고와 주가 상승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상속세 최대 주주 할증제도 폐지 등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법인세와 마찬가지로 세법 개정 과정에서 부자 감세 등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 결부돼 있어 단기간에 해답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세제 혜택과 별개로 이사회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 역시 기업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보다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으로 꼽힌다. 현재 상법상 규정된 이사회 의무에 ‘회사 이익’뿐 아니라 ‘주주 이익’을 명시적으로포함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주주 이익에 반하는 조치를 할 수 없도록 통제하겠다는 취지다. 소액 주주의 권익 보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기업 입장에서는 배임 이슈에 직면할 수 있고, 이 또한 상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실행 가능성은 미지수다. 결국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참여 주체인 기업에 대한 유인책이 부족하고 강제성이 결여된 상태다.

/셔터스톡

개인투자자 인센티브도 안갯속

투자자 입장에서 아직 별다른 인센티브 방안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개인투자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배당소득세를 분리 과세하는 방안을 정부가 제시했으나, 이 또한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종의 경우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고 공통적으로 적극적인 주주 환원 조치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세법에서는 배당소득세가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돼 투자자는 이중과세 부담에 노출돼 있다. 참고로 미국은 배당소득세를 분리 과세하고 있으며, 일본과 대만은 분리 과세 혹은 종합과세 중 유리한 쪽을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국내 상장사가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시행해 배당을 늘린다고 해도 배당소득세의 세율 15.4%에 더해 최고 세율이 49.5%에 달하는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부과된다면 개인투자자의 실질적인 배당소득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금융투자소득세 도입과 관련된 이슈 역시 지속적인 논란의 중심에 있다. 결국 하반기 밸류업 프로그램이 재차 주가 상승을 견인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태다.

임원회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ROE는 이른바 경영 지표 중 하나로서 동종 산업 내 경쟁 기업과 비교 지표로 활용된다. 대내외 상황이 어떻든지 ROE가 높은 기업은 경영진이 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12개월을 평가해 보자. 한국의 지난 12개월간 ROE는 6.42%에 불과했다. 전 세계 지수가 15%,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수가 11%에 이른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 낮다. 2024년 기업 이익 증가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8%에 불과하다.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당장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도 어렵다.

길게 보면 밸류업 프로그램이 분명 한국 증시를 한 단계 도약시킬 모멘텀이 될 것이라 보지만, 아직 주주 환원을 확대할 유인이뚜렷하지 않고 배당을 늘려 주주 환원을 높일 정책 개편도 요원하다. 유럽을 필두로 금리 사이클 전환이 시작되긴 했으나 국내외 경기 여건과 기업 실적 그리고 정책 모멘텀 공백을 감안할 때, 뜨거운 서머랠리보다는 차분한 여름을 준비하는 자세 또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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