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석의 매크로 리뷰 <1> 재고와 경제성장] 설비투자 부진, 자본축적 멈춘 韓 경제…‘축소재생산’에 빠지나

정원석 선임기자 2024. 6. 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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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은행

미래 수요를 위해 쌓아 놓는 재고는 기업 경영 측면에서는 ‘저축’ 같은 기능을 한다. 재고 제품을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수요에 대응해 공급하면 시장점유율 확대 기회 열린다. 재고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구축한 것은 ‘초격차 기술’ 외에도, 효율적인 재고관리의 기여가 상당했다.

재고를 적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것은 미래 수요가 탄탄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라는 게 경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재고 유지는 ‘생산→판매→투자’ 선순환의 핵심 키워드로 볼 수 있다. 나라 전체로는 ‘재고 증감’의 국내총생산(GDP) 성장 기여도 ‘플러스(+)’가 경제의 확대재생산 징후로 볼 수 있다. 재고와 설비투자 등이 포함된 총자본형성이 늘어나는 구조가 지속된다는 측면에서다. 반대로 총자본형성 증가세가 주춤해질 경우 축소재생산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4분기 연속 재고 증감 GDP 성장 기여도 마이너스 ‘쇼크’

한국은행이 6월 5일 발표한 ‘2024년 1분기 국민소득(잠정)’을 뜯어보면, 재고, 생산, 투자의 선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기비 1.3%(전년동기비 3.3%) 증가하며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뜨거웠던 2024년 1분기 GDP 성장의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평가는 지출 항목별 GDP 성장 기여도 분석에 따른 것이다. 1.3%의 GDP 성장률에는 순 수출(0.8%포인트), 건설투자(0.5%포인트). 민간 소비(0.3%포인트) 등이 플러스, 설비투자(–0.2%포인트), 재고 증감(–0.3%포인트) 등은 마이너스 기여도를 나타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분기 GDP 1.3% 성장은) ‘4분의 3’이 순 수출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며 “겨울 날씨가 좋아서 에너지 수입이 많이 줄었고, 반도체 투자가 지연되면서반도체 설비수입도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성장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투자, 재고 등이 뒷걸음질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설비투자의 성장 기여도는 2022년 4분기 이후 7개 분기 중 1개 분기만 플러스일 정도로 부진하다. 특히 재고 증감의 성장기여도는 2023년 2분기 이후 4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상태다. 2024년 1분기에는 GDP상 재고 증감이 3조6000억원 감소했다. 미래 수요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1년 이상 재고조정을 지속하면서 투자에 소극적이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결과 설비투자, 건설투자, 재고 증감 등이 포함된 GDP 통계상 총자본형성은 2023년 2분기(173조3000억원)를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총자본형성의 GDP 기여도 또한 2023년 2분기 이후 마이너스 상태다. 2024년 1분기 국내 총투자율(29.7%)은 2016년 2분기 이후 8년 여만에 30% 아래로 추락했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장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되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재고 소비로 현재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대응한다”면서 “투자 감소와 재고조정이 장기간 이어지면 경제가 축소재생산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 통계청

“HBM 등 고성능 반도체 설비투자 늘어나야 경기회복 지속”

총자본형성이 뒷걸음질하는 것은 반도체 불황 충격이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산 기조를 유지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재고 누증에 따른 어려움을 겪었다. 통계청 국가 통계 포털 코시스(KOSIS)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150 수준이었던 반도체 및 부품의 재고지수(계절 조정)는 2023년 4~5월 사상 최대인 191, 195 수준으로 급증했다.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서 제품 출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판매 부진에 따른 재고 누증이 대규모 적자 등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자 삼성전자는 ‘불황기에도 증산을 유지해서 점유율을 높인다’는 전략을 포기하고 감산에 나섰다.

그 결과 그 이전까지 평균 100%를 초과했던 반도체 업종의 가동률은 2023년 4~7월 80%대로 뚝 떨어졌다. 감산, 재고조정을 통해 출하를 늘리는 방식으로 불황에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반도체 업종의 재고지수는 2023년 12월 이후 130~140대로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재고조정으로 인한 생산·투자 부진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시각이 많다. 2023년 15조원가량 적자를 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업황 개선으로 2024년 1분기 흑자로 전환했지만, 2023년 이전의 수익성 회복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SK하이닉스 등에 빼앗긴 것의 후폭풍이 설비투자 지연 등으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8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 라인 7개 이상 증설을 추진 중이지만, 3라인 양산 체계 구축 이후 2023년부터 4라인 공사 진행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업황이 개선되면서 삼성전자가 6월 중 파운드리반도체를 생산하는 평택캠퍼스 4공장 내부 공사를 재개할 전망이지만, 투자 일정 등이 애초 계획에 비해 상당히 늦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권효성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AI 반도체 등 새로운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재고조정이 장기화하는 것 같다”면서 “설비투자 확대 등 확대재생산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HBM 등 차세대 시장에서 기술 우위가 확보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올해는 설비투자 혹한기 벗어날까…
한은 “3.5% 증가” 전망치 하향 조정

1분기 국내총생산(GDP) 1.3% 성장에 힘입어 5월 23일 발표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2024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0.4%포인트 상향한 한국은행(한은)은,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는 종전의 4.2%에서 3.5%로 0.7%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지난 2월 발표한 경제 전망에서 2.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반기 설비투자 증가율을 1.2%로 낮추면서 연간 전망치 수준이 낮아진 것이다. 2023년 0.5% 증가에 그쳤던 설비투자 부진이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반기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는 종전 전망치(5.7%)를 유지했다. 한은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대한 투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공급 차질 등에 따른 항공기 도입 지연 등으로 1분기 설비투자가 전기 대비 감소한 영향을 반영한 것”이라며 “경기 호조로 고성능 반도체 공정 중심 투자 확대가 이어지고 있어 투자 증가 흐름이 재개될 것이지만, D램과 낸드 등 기존 범용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 회복 지연 가능성 등은 리스크로 잠재해 있다”고 밝혔다.

연구개발(R&D) 등 지식재산 생산물 투자는 2023년(1.6%)보다 개선된 2.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수출 호조에 따른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개선으로 투자 여력이 증대됐고, AI 등 신성장 분야 기술 경쟁력 확보 노력이 지식재산 생산물 투자를 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 관계자는 “양호한 기업 실적에 힘입어 기업의 연구개발이 늘어나고 AI 관련 소프트웨어 수요도 증대됨에 따라 증가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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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在庫·inventory)

필요할 때 신속하게 고객 수요에 응하고, 기업이 조업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직접 관리하는 재화의 공급을 말한다. 재고는 비용이 많이 드는 투자 형태이기 때문에 기업은 적정한 기업 활동에 따른 최저 수준으로 재고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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