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도마위 'GTX 변전소' 헤어드라이기보다 전자파 낮다고요?
동일 위치·전력 신분당선 변전소 전자파 재보니
국제권고 28분의 1, 드라이기보다 낮아 "영향 미미"
지난 20일, 34℃ 불볕더위가 한창인 오후 2시께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을 찾았다. 이날 역사 안 대합실 한켠에는 수도권 내 변전소 현황을 보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추진 중인 국가철도공단, 사업운영사인 GTX-C 주식회사 관계자가 모여 GTX 변전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전자파 수치를 직접 측정해 보여주고자 마련된 자리다.
때아닌 전자파 논란인가 싶지만, 최근 GTX가 놓이는 인근 주민들에게는 '빅이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버선발로 맞았던 GTX가 집 근처 '변전소' 설치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르자 삽시간에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했다.
최근 개통한 GTX-A를 비롯해 B, C노선 변전소 건립 예정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건립을 철회하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로부터 민원세례를 받는 지자체도 국토부에 변전소 건립 취소를 요청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전기엔진으로 구동하는 GTX 운행을 위해서는 역 인근에 변전소 설치가 필수적이다. 더욱이 GTX 노선 전체가 수도권 전체를 가로지르는 만큼 수도권 내 변전소 설치는 불가피하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빈 땅을 찾기 어려운 도심 내에서 그나마 가능하고 안전한 땅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미 기존 지하철을 비롯해 신분당선 등 운행을 위한 변전소가 도심 곳곳에 설치돼 있다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고압 전력이 들어오는 변전소가 집 근처에 들어선다는 소식에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일견 당연해 보인다. 이처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국토부가 직접 나서 안전성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수도권 내 총 17곳…주택가 인근, 고가아파트 근처에도
신분당선에 전력을 공급하는 '매헌변전소'는 이날 찾은 양재시민의숲역 지하 3층(지하 4층 깊이)에 위치해 있었다. 주택가와는 100m 거리다. 인천 주안변전소 역시 인근에 주택가와 학교가 있다. 나머지 변전소 입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을 내놨다.
차두표 국가철도공단 GTX-C 사업단장은 "수도권 내 전철변전소는 매헌변전소를 포함 12곳이 운영 중이며, 공사, 설계 중인 곳을 포함하면 총 17곳"이라며 "도심 내 주택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건설돼 있어 몇몇 변전소는 주변 아파트와 100m 이내 거리에 있다"고 말했다.
변전소는 실제 이름만 대면 아는 소위 고가아파트 근처에도 인접해 있었다. 차 사업단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GTX-C 노선 전력공급을 위해 건립 예정인 청량리역, 부천 상동 변전소 인근 시민들의 전자파 노출에 대한 우려가 극심해 실제 운영되는 변전소에서 전자파를 측정해 안전성을 입증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매헌변전소는 한전으로부터 15만3000V(볼트)의 전력을 받아 2만5000V로 전압을 낮춰 신분당선 전동차에 전력을 공급한다. 청량리변전소와 건립 위치와 전력공급 시설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선정됐다.
전자파 연구 전문가로 참석한 김윤명 단국대학교 전자공학과 명예교수는 "300Hz(헤르츠) 이하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 전자계는 주파수가 낮아 양자역학적 에너지가 거의 없고, 파장이 길어 먼 곳까지 전파되지 않는다"면서 "인체에 축적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자파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비전리방사보호위원회(ICNIRP)는 전계(전기장)와 자계(자기장)에 권고치를 정하고 있다. 전계는 각각 8.33kV/m(킬로볼트퍼미터), 4.17kV/m이며, 자계는 83.3μT(마이크로테슬라)다. 우리나라는 이 권고치를 준용해 전계는 3.5kV/m, 자계는 83.3μT를 기준값으로 정하고 있다.
김 교수는 "WHO 국제 전자계 프로젝트 연구결과 극저주파 전계는 일반인이 노출돼도 건강문제가 없다"며 "자계는 장기간 낮은 수준 노출에 대한 암 진전은 밝혀진 바 없고 동물연구에서도 인과관계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단기간 높은 수준 노출은 국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준이 60Hz, 83.3μT다.
헤어드라이어의 5분의 1, 전자렌지의 11분의 1
승강장 쪽으로 내려가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마크가 붙은 문을 여러 개 지나자 밖에선 들리지 않았던 매헌변전소의 주변압기 돌아가는 소리가 다소 크게 들렸다. 커다란 주변압기 앞 1m 거리에서 자계 측정이 이뤄졌다.
김철환 국토부 철도시설안전과 철도안전감독관은 "변압기 바로 앞 1m 거리, 2.7~3.0µT로, 헤어드라이기보다 전자파가 낮다"고 말했다.
이날 측정한 헤어드라이기 자계는 16µT, 전자레인지의 경우 최대 35µT를 기록했다. 변압기에서 발생하는 자계는 드라이기의 5분의 1, 전자레인지의 12분의 1 수준이었다. 주변압기 5m 거리에서 측정한 값은 0.2µT, 25m 상부인 지상에서 측정한 값은 0.04µT로 나왔다. 지상은 권고치의 약 2000분의 1 수준이었다.
김 교수는 "전자파는 송전선로 외 실생활 속 가전제품에서도 발생하는데, 기존에 운영 중인 지정 송전선로에서 발행하는 전자계 값은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전자계 값보다 낮다"고 말했다.
청량리변전소가 국공립어린이집과 인접해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답했다. 차재언 GTX-C 설계팀장은 "국공립어린이집은 인접단지에서 가장 먼 부분에 있는데 아파트에서 가장 인접한 곳은 40m 거리다. 이 거리를 기준으로 환경영향평가를 거쳤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청에서 국토부에 변전소 건립 사업취소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서정관 국토부 철도국 수도권광역급행철도과장은 "변압기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지상에서는 전자파 측정이 거의 안돼 이격거리 기준이 없다"며 "이 때문에 거리를 강조해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취소는 검토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며, 변전소 위치와 영향은 주민설명회와 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폭발, 화재 위험 우려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김철환 감독관은 "3년 전 전철변전소가 아닌 한전의 남대전변전소에서 변압기 화재가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몇 가구 정전과 열차가 잠시 멈춘 영향만 있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화재 예방을 위한 감지시설 설치와 검증을 받고 있으며, 설비가 모두 지하에 위치해 화재가 난다고 해도 주변 주택지역 피해는 미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미리내 (pannil@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