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간호사 500명 채용 중단…국립·사립대병원 4곳 중 3곳 '비상경영'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비상경영'에 돌입한 병원들이 인건비 감축을 이유로 신규 간호사의 채용을 잇달아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대 500명이 '채용 중단'된 곳도 있다.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진료 지원(PA) 간호사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해 실제 의료사고를 경험하거나 이에 근접한 오류를 범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한 달 동안 총 11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의료현장 실태를 조사해 결과를 24일 공개했다. 대상 기관은 국립대병원 10곳, 사립대병원 37곳, 지방의료원 26곳, 민간중소병원 14곳, 적십자병원 4곳, 근로복지공단병원 6곳, 특수목적 공공의료기관 11곳, 재활의료기관 5곳 등이다.
이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이탈과 의대 교수들의 휴진 등이 4개월 이상 장기화하면서 의료기관의 운영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전공의 수련병원인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 74.5%가 비상경영체제로 운영될 만큼 경영난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 52곳이 비상 경영을 선포했는데 특히 전공의 비율이 높은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은 47곳 중 35곳이 해당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현재 각 병원은 병상 운영 효율화, 비용 절감, 인력 운영 효율화 등 3가지 내용으로 비상 경영을 시행하고 있다. 병상 운영은 일반병동을 통폐합하거나 축소하고 중환자실의 병상을 줄이는 식으로 효율화를 꾀한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2월 20일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을 폐쇄·축소 운영하는 곳은 24곳으로 파악됐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 예산을 전면 재검토하고 공사 연기, 장비 구입 최소화에 이어 일반 소모품 지급 중단을 결정한 병원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 절감의 '타깃'은 아이러니하게 간호사·의료기사 등 의사를 제외한 직역이다. 노조는 "비상경영계획의 주요 내용이 인원 동결과 결원 미충원, 신규 채용 중단, 인력 재배치, 무급휴가·무급휴직, 연장근로 자제, 근무 시간 단축 등 인력 운영 효율화와 인건비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개했다.
특히, 신규 채용 중단은 심각한 수준이다. 영남의 A 국립대 병원은 무려 497명의 신규 간호사 채용을 중단했다. 경기도의 B 사립대 병원은 268명, 충청도의 C 사립대 병원은 250명, 영남의 D 사립대 병원도 150명 등 간호사 채용 중단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반면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무분별하게 PA 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의료 현장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 47곳 중 43곳(91.5%)이 PA 간호사를 늘렸다고 응답했다. 일반간호사를 PA 간호사로 전환한 곳이 44곳(93.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업무는 늘어났지만 PA 간호사에 대한 교육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곳이 국립대·사립대병원 47곳 중 14곳(29.8%)에 달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채 진료 현장에 투입되다 보니 의료사고의 위험에 매일 노출된다. 실제 PA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를 일부 담당하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곳은 1곳이다. 근접 오류(아차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곳은 8곳이었다. 이 중 6곳이 국립대병원·사립대병원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제대로 된 교육훈련 과정도 없이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진료 거부 사태로 인한 의료공백과 진료 파행을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온몸으로 메우고 있다"며 "(이들의) 희생·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조속한 진료 정상화 조치가 없으면 참을 만큼 참아온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와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의정 갈등과 의사 진료 거부 사태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6월 이내로 정부와 국회, 의사단체가 진료 정상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불법 의료를 포함해 병원의 무책임한 책임 전가 사례를 낱낱이 알리는 등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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