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홀에서도 떨렸지만 끝까지 집중” 자신과의 싸움 이겨낸 양희영, 이번엔 '메이저 퀸'
프로 데뷔 17년 만에 첫 메이저 우승
"메이저 우승 문턱서 겁먹던 기억 떠올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집중"
메이저 우승으로 파리올림픽 출전권도 확보
박인비 이어 두 번째 통산 상금 1500만 달러 돌파
마지막 18번홀을 향해 걸어가던 양희영(35)은 캐디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첫 메이저 우승을 향한 길고 긴 항해를 끝내는 순간에서야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놨다.
양희영은 24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서매미시의 사할리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총상금 1040만 달러)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에 더블보기 1개와 보기 3개를 묶어 이븐파 72타를 쳤다. 최종합계 7언더파 281타를 기록한 양희영은 공동 2위에 자리한 릴리아 부(미국), 고진영(29), 야마시타 미유(일본·이상 4언더파 284타)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이날 우승으로 ‘메이저 퀸’이라는 타이틀과 파리올림픽 출전권 획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2타 차 선두로 최종일 경기에 나선 양희영은 1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기세를 올렸고 3번홀(파4)에서 보기가 나왔으나 5번(파3)에서 칩인 버디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어 8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잡아내 전반에만 2타를 줄였다. 이때까지 2위와 타수 차는 5타로 벌어져 수월한 우승 경쟁이 이어졌다.
후반에도 10번홀(파4)에서 보기가 나왔으나 이어 11번홀(파5)과 13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7타 차 선두로 달아나 사실상 우승을 예약했다.
경기 막판엔 16번홀(파4) 보기에 이어 17번홀(파3)에서 더블보기로 타수를 잃었으나 승부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마지막 18번홀(파5)을 남기고 3타 차 선두가 된 양희영은 파를 기록하며 우승트로피에 이름을 새겼다.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양희영은 “18홀 내내 이렇게 긴장을 느낀 게 처음이었다”라며 “마지막 홀 그린을 향해 걸어가던 중 캐디에게 ‘이렇게 긴 18홀 경기는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고 18번홀 그린에 올라오면서도 너무 떨렸다. 타수 차가 많이 나기는 했으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집중했다”라고 긴장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경기 중반 7타 차 선두로 나서 우승 경쟁이 수월했지만, 그때도 마음을 놓지 못한 것은 그만큼 메이저 우승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양희영은 “골프 커리어 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놓쳐서 아쉬웠다”라며 “그게 쌓이면서 우승에 가까워질 때마다 겁을 먹는 내 모습이 보였고, 이번 주에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만 끝까지 집중하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양희영은 이날로 75번째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고, 21번의 톱10 끝에 그토록 기다렸던 첫 메이저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우승의 원동력으로는 5번홀에서의 칩인 버디를 꼽았다.
그는 “이번 주 내내 쇼트게임이 좋았고 파세이브를 잘했다. 샷은 할 것도 없다”라며 “5번홀에선 경기 초반이라 많이 긴장했고 제가 생각했던 만큼 자신 있게 티샷하지 못했다. 그래서 짧았는데, 어프로치를 상상하고 치고 싶은 방향으로 쳤다. 맞는 순간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양희영은 5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2위 야마시타와 격차를 2타로 벌렸고, 그 뒤 더 이상의 추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승으로 파리올림픽 출전권도 확보한 양희영은 8년 전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대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나흘 합계 9언더파 279타를 쳐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양희영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대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영광이다”라며 “한국 여자 골프가 굉장히 강한데, 그런 팀에 이름을 올린다는 게 크나큰 영광이다. 올림픽 때까지 잘 준비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양희영의 우승으로 이번 시즌 개막 이후 15개 대회 동안 이어온 한국 선수의 긴 우승 침묵을 깼다. 지난해 12월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로는 마지막에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양희영은 우승 침묵을 깨는 주인공도 됐다.
또 이날 우승으로 LPGA 투어 통산 6승이자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 이 대회에서 처음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30번째 선수가 됐다.
우승상금 156만 달러(약 21억 7000만원)를 받은 양희영은 한국 선수로는 박인비에 이어 두 번째 통산 상금 1500만 달러 돌파의 기록도 세웠다. 이날 우승상금을 더해 통산 1555만5632달러를 벌었다.
양희영은 ‘지금이 전성기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진짜 너무너무 영광이고, 이번 우승으로 꿈꿔왔던 올림픽에 한 번 더 출전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라고 기뻐했다.
주영로 (na187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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