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조 규모’ 부동산 PF 솎아내기…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사업 추진 위한 자본요건 신설 방안 검토해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30조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됐다. 핵심은 돈 되지 않는 사업장의 과감한 정리다. 사업성을 평가해 되살리기 어려운 사업은 정리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미 정부는 구체적인 시기와 기준을 제시했다. 사업성 평가 등급은 기존 4단계에서 '유의' 등급을 신설해 5단계로 세분화했다. 신설된 '유의' 등급은 지속적, 중대한 애로 요인으로 인해 사업 진행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기존의 '부실 우려' 등급은 아예 추가 사업 진행이 곤란한 경우다. 앞으로 '유의' 등급을 받은 사업장은 재구조화 자산 매각을, '부실 우려' 등급을 받은 사업장은 상각이나 경매 또는 공매를 통한 매각을 추진하게 된다.
당장 이달부터 금융회사들은 연체 또는 만기 연장이 많은 사업장부터 시작해 개별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사업성을 평가해야 한다. 7월말까지 '유의' '부실 우려' 단계의 사업장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어 금융 당국은 8월부터 사후관리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점검한다.
금융 당국이 추산하는 구조조정 대상 PF 사업장은 전체 PF 사업장 중에서 5~10% 수준이다. 금액으로 보면, 최대 23조원 안팎의 PF 대출이 부실 우려를 안고 있다는 의미다.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의 대부분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보유 물량일 것으로 보인다. 여신 만기를 4번 연장했거나, 연체이자를 내지 못하고 만기를 연장했거나, 경매나 공매에서 3회 이상 유찰된 사업장은 구조조정 대상 우선순위다.
PF 사업장 5~10%는 구조조정 대상
금융 당국이 구조조정에 착수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지금까지 PF 시장 안정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부실을 감당할 수 있는 시장 상황이 마련됐다는 판단이 있다. 정부는 지난 2년간 신규 PF 대출은 막고, 브리지론을 연장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했다. 당국은 2022년 10월부터 채권안정펀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시장안정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PF 사업자보증 등에 80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올해 3월에도 PF 사업자보증 추가 확대, 비주택 사업자보증 신설 등에 9조원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지금도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상품을 통해 부동산 PF 부실을 넘기고 있다.
덕분에 상황은 많이 나아졌다. 현재 건설사들은 여전히 금리가 높기는 하지만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고 있다. 한때 회사채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자금 조달이 멈추다시피 한 것과는 다르다. 작년 말 2.70%를 기록했던 전체 금융권 PF 대출 연체율이 지난 3월말 3.55%로 높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연체율이 높은 증권사와 저축은행도 자기자본 비율이 비교적 높고 상당한 충당금을 이미 적립한 상황이라 앞으로 추가적인 손실이 발생해도 관리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PF 대출의 만기 도래가 특정 시점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포된 점도 다행스럽다. 오히려 초기 단계에서 사업을 포기하면 손실이 제한적이라 감내하기 쉽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에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천문학적인 자금 투입에도 저축은행과 캐피털 등 제2금융권의 건전성과 유동성 환경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는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희망하고 있지만, 일부 취약한 중소 금융회사나 건설사의 손실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
특히 지방의 중소 건설사가 약한 고리다. 정부가 총선을 치른 후에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구조 개선이 어려운 곳이나 정리해야 할 곳이 너무 많을 수 있다.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는 토지도 예상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고 구조조정 과정의 고통은 어차피 시장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상황에 따라 정부와 공적 부문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공적 부문이 최대한 나서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든 부동산 PF를 살릴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주택건축 시장이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운용의 지혜는 필요하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PF 대책에 수요 회복과 관련된 부분은 없었다. 자칫 시행사 등 공급자만 정리하면 하도급 부실 정리에 따른 연쇄반응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신규 사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발업체의 연쇄 부도로 주택 착공이 줄거나 지연되면서 2~3년 내 주택 공급이 급격하게 감소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주택 공급 물량은 예년 수준보다 못하다. 정부는 시장의 지나친 불안을 제거해 사업성 있는 주택은 계속 지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위험과 기대 이익이 비례하도록 구조 바꿔야
이번 기회에 구조조정과 동시에 부동산 금융 시장에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모색해야 할 필요도 있다. 부동산 PF 시장은 금리가 오르거나 경기 둔화로 조금만 사업 환경이 위축되면 위기설이 등장하면서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이 되고 있다. 우선 지적되는 부분은 시행사의 낮은 자기자본 비율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사업은 시행사, 금융사, 시공사의 협력으로 이뤄지지만, 시행사의 자기자본은 잘해야 땅값의 초기 계약금 정도인 경우가 많다. 나머지는 모두 빌려서 충당한다. 대부분 제2금융권으로부터 자기자본의 10배 안팎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 땅을 산다. 이른바 브리지론이다. 사업부지를 확보하면 다음 단계로 인허가와 시공사 선정을 거쳐 은행으로부터 정식 담보대출을 받아 브리지론을 갚는다. 대부분의 사업비가 대출로 마련되는 한 금리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고 위기에 취약하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고 금리가 오르면 바로 유동성 위기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예상되는 위험과 기대 이익의 분산도 공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분양까지 잘 마치고 사업이 성공하면 시행사가 가장 큰 이익을 보게 되는데 시행사는 대부분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주주는 유한책임만 지며 사업이 잘못되면 이미 낸 돈으로 손실이 한정된다. 감당해야 하는 위험 수준과 비교해 시행사의 기대 이익이 지나치게 크다. 위험과 기대 이익이 비례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토지 계약금 정도는 시행사의 자체 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 추진을 위한 자본 요건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 수익을 노리고 PF 확대를 부추기는 금융사들의 행태도 개선이 필요하다. 부동산 PF의 방만한 운영에는 금융사의 책임도 작지 않다. 장기 성과에 근거를 두는 보수체계가 자리를 잡으면 그만큼 더 위험 수준과 투자 기간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부동산 PF는 한국에만 있는 비정상적인 금융시장이다. 걸핏하면 위기가 재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속한 구조조정뿐만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판 구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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